[영화리뷰] 너의 결혼식

불나방은 해가 내려앉고 어스레한 저녁 빛이 찾아오면 가로등이나 차창 불빛을 향해 달려든다. 빛을 향한 나방의 돌진은 맹목적이다.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그 행동에서 이성과 합리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 `너의 결혼식`은 첫사랑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한 남자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김영광)은 자신의 학교로 전학온 승희(박보영)에게 3초 만에 호감을 느껴 사랑에 빠진다. 여기서 사랑에 빠진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런 단서도 제시되지 않는다. 우연 자신의 이름처럼 그저 우연히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불나방이 빛을 향해 날아가는 데는 이유가 중요치 않다. 그저 빛이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영화는 우연이 승희와의 고교시절 로맨스를 회상하면서 시작되는데, 스토리 전개나 설정이 진부한 편이다. 남학생은 강하고 여학생은 연약하고 가난하며, 학교에는 여학생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들이 존재하는 판에 박힌 설정이다. 여기에 남녀 주인공이 함께 담을 넘어 일탈을 즐기다 학생주임에게 걸려 급기야 `함께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전형적인 클리셰까지 연출되고 만다. 우울해하는 승희를 위해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방송부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교내에 라이브 노래를 송출하는 연출은 새삼 영화 쇼생크 탈출의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은 간수실 문을 잠근 뒤 턴테이블 위에 LP 판을 올린다. 수용소 전체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일순간 죄수들이 음악에 심취하는 장면은 얼마나 훌륭한 연출이었던 것인가.

어쨌든 첫사랑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은 승희의 가정사로 인해 헤어지게 되고 우연은 시름에 빠져 뚜렷한 목표 없이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승희가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사실을 알게 된 우연은 다시 불나방이 돼 노력 끝에 승희라는 불빛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승희가 재학 중인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연애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로 잘 풀리지 않게 되고, 승희를 차지하지 못해 마음 속에 남은 우연의 미련은 사회초년생까지 이어지게 된다.

두 사람은 `남자가 여자의 생명을 구해주며 사랑이 싹 튼다`는 진부한 설정을 통해 결국은 연애를 하게 되지만 기쁨의 순간도 잠시, 둘은 우연이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로 이별하게 된다. 이후 놀랍게도 우연의 미련은 승희가 결혼하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남자는 모두 `애` 같다는 우연의 전 여자친구가 했던 말이 절실해지는 순간이다. 우연뿐 아니라 극중 남성들은 시종일관 철없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앞서 이 영화를 성장기라고 표현한 이유는 주인공 우연이 마지막 승희가 결혼하는 순간에 딱 한번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연은 결혼을 앞둔 승희를 찾아가 자신의 지난날을 반추하며 반성어린 고백으로 승희를 놓아준다. 설마 결혼식을 파투낸 뒤 신부의 손을 잡고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것은 아닐지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클리셰로 점철된 완벽히 진부한 영화가 될 뻔 했다.

영화의 시점이 학창시절에서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따뜻한 색감에서 차가운 색감 변해 현실성을 높인 점은 좋았다.

플롯의 개연성이 매우 엉성했던 점은 아쉬웠다.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 고등학생과 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 초년생 네 가지 에피소드를 무리하게 모두 담으려 했던 탓이다.

불나방이 불을 향해서 날아드는 것은 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빛을 향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나는 습성 때문이다. 우연이 승희에게 집착했던 것도 실은 승희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승희를 좋아하는 본인의 일정한 모습을 좋아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불나방의 습성처럼.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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