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와 함께 한 1001번의 점심식사] 마이클 크로닌 지음·강도은 옮김 열림원·552쪽·1만5000원

여기 20세기 최고의 사상가이자, 명상가, 철학자 등으로 불리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식사를 15년 가까이 책임져 온 사람이 있다.

그의 추종자였던 요리사 마이클 크로닌.

그는 크리슈나무르티가 세상을 뜨고 세월이 어느정도 흐른 뒤 그때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냈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독일에서 태어나 어른들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에 대해 죄 의식을 느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20대 후반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난 그는 크리슈나무르티를 가까이서 바라보고 느낀 잔잔하고 세밀한 일화들과 요리 이야기들을 색색의 비빔밥처럼 다양하게 버무려 놓았다.

1970년대 권위주의와 억압적인 체제를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분노를 폭발하던 그 때, 크리슈나무르티는 정신적 스승으로 떠올랐고, 그의 강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저자 역시 그의 추종자로써 신비로운 인물로 묘사할 법도 하지만 이 책에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 많이 나온다. 빙그레 미소짓게 하는 사소한 에피소드부터 천진하면서도 진솔한 언행과 유머, 저자 자신의 벅찬 감동과 자기반성, 작은 깨달음들이 여러 채식 요리 레시피들과 함께 들어있다.

크로닌은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기 전까지 한번도 정식으로 요리를 배워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찾아낼 자유가 있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그는 `채식 요리 미식가를 위한 요리책`을 쓴 알란 후커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한다. 채식 요리를 기본으로 오일, 유제품은 최소한으로만 사용하고, 버터나 크림은 대체로 피했다. 정제된 밀가루, 설탕, 가공 식품도 되도록 사용하지 않았다. 크리슈나무르티는 평생 고기나 가금류를 섭취하지 않았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목적 이외에 자신의 만족감과 이기심을 위해 함부로 생명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강하게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그가 먹는 음식에서도 생명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일관되게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존재 안에 자리잡은 업과 번뇌의 틀을 깨려면 최소 1000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저자는 크리슈나무르트의 삶과 그의 가르침을 선망하는 추종자로만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1000여번의 식사를 통해 크리슈나무르티라는 특별한 거울에 자신의 삶을 비추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의 의미가 `1001번의 점심 식사`라는 상징적인 표제에 스며있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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