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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 허균이 추천한 백마강의 물고기 요리들

2018-09-12기사 편집 2018-09-12 08: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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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게 되면서 새롭게 접하게 된 음식 문화 중에 하나는 민물고기 요리이다. 우선 민물에도 바다만큼 다양한 종이 살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바다에만 있으려니 했던 게와 조개가 민물에도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내 상식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민물고기 요리를 매운탕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리법으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시골 살이의 맛에 빠져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시골 마을 곳곳에는 저수지와 작은 지천들이 많기 때문에 거기에서 사는 다양한 생물 종들이 사람들에게 친숙한 먹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금강과 백마강 변에서 문화를 꽃 피운 부여에는 정말 다양한 민물 어종들이 많다. 특히 백마강에는 맛이 좋은 어족 자원이 많아서 옛 기록들을 살펴보면 부여는 조선의 관리들이 선호하는 지방 근무지였다.

지금은 남획과 수질 오염으로 개체수가 거의 사라져 복원 사업을 하고 있는 종어(宗魚)라는 물고기가 있다. 살이 연하고 비늘과 잔가시가 없으면서도 잉어만큼 큰 어종인 종어는 맛도 뛰어나 임금님의 수라상 진상품이었다고 한다. 이 종어라는 물고기 때문에 조선시대 지방 근무를 해야 하는 관리들이 가장 부임하고 싶어 하는 곳이 부여의 임천군수 자리였다고 한다.

서해로 흐르는 백마강에서 잡히는 질 좋은 종어를 많이 잡아서 진상을 할수록 승진하기가 쉬웠다고 한다. 짐작컨대 임금에게 진상하는 진상품들이 곧장 궁궐의 수라간으로 직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자리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하고 상관의 눈에 들기 위해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먹 거리이다. 먹 거리를 가지고 사람을 만나는 일 만큼은 뇌물이라는 의혹의 눈길을 좀 비껴갈 뿐만 아니라 맛이 좋으면 기대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백마강에 낚시를 하러갔다가 커다란 종어를 한 마리 잡았으니 용봉탕을 해서 보신 좀 하시라고 하면 어느 상관이 천하 일미라고 입소문으로 듣던 종어를 마다했을까. 누구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그 음식의 유래에 대해서 오래 기억하기 마련이다. 그런 물고기이니 부임하는 군수마다 종어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임천군의 백성들을 얼마나 들볶았을지 짐작이 간다.

부여에서는 우여라고 부르는 위어(葦魚:갈대 사이에서 사는 고기라는 뜻)는 백마강의 민물과 서해의 바다를 오가며 사는 부여의 대표적 물고기이다. 또 생긴 것은 얼마나 잘 생겼는지 요즘 말로 쭉쭉빵빵한 외모에 살이 기름지기까지 해서 백제시대부터 임금들과 백제인들의 미식을 자극해 왔다고 한다.

부여에 살게 되면서 우여가 한철인 봄이 되면 우여 회무침을 맛 볼 생각에 군침을 흘리게 되었다. 우여는 꼬들꼬들한 살이 씹을수록 맛이 있어서 민물 회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나한테 우여는 민물고기도 회로 즐기는 것을 보여준 음식에 대한 지평을 넓혀준 특별한 물고기이다.

백마강 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과거에 우여회를 먹었던 방법에 대해 물어보니 채소가 귀했던 예전에는 묵은 김치에 투박하게 썬 우여회를 싸먹었다고 한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아직도 강한 양념에 무쳐 먹는 요즘 식의 우여회 무침보다 굵게 썬 우여회 한 점에 묵은지를 싸서 먹던 맛이 그립다고 한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 균은 그 책 한권으로 명성을 선점해버려서 그가 조선 최초의 맛 칼럼리스트이며 요즘 말로 맛집 블로거였다는 사실은 가려져 있다. 그의 다른 저서인 '성소부부고'에는 팔도의 특산물을 소개하고 그 요리법까지 자세하게 서술해 놓았다. 허 균은 이미 그가 살았던 시대에 지방마다 시그니쳐 메뉴가 될 만한 맛을 찾아 팔도를 유람하고 기록까지 남겨두었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맛 칼럼리스트인 셈이다.

그도 부여에 근무하고 싶어 했다. 그가 삼척 부사 자리에서 대기 발령 중일 때 이왕이면 임천 군수로 보내달라는 인사 청탁 편지를 썼다. 백마강에서 잡히는 참게 장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왕이면 임천 군수로 가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말만 들어도 침샘을 자극하는 백마강의 참게 장맛이 오죽했으면 당대의 인물이었던 허 균이 부임지로 부여를 원했을까.

백마강이 워낙 굵직한 역사 속에 노출되다 보니 사람들은 백마강이 간직한 잔잔한 이야기 거리들은 잘 모른다. 유장한 역사 속에 한 줄로 기록된 백마강의 이야기를 먹 거리로 풀어 보았다. 맛이 있는 음식은 사람들에게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게 하고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맛에 대한 경험만큼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려 애쓴다.

시골에 사는 맛과 멋이라면 가끔씩 이웃들과 함께 해먹는 이런 토속 요리들이다. 무더위에 기력이 떨어지고 입맛도 없는 요즘에는 백마강에 잡히는 얼큰하고 시원한 메기 매운탕 한 그릇으로 입맛을 돋우고 가물치 어죽으로 몸보신을 하면 좋다. 오창경 해동백제 영농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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