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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수의 음악산책] 클라라 슈만

2018-09-07기사 편집 2018-09-07 08: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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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연한 기회로 우리나라 여성잡지 중 하나인 '우먼센스' 30주년 행사 및 K Queen 콘테스트를 봤다.

처음 받았던 인상과는 달리 결혼 한 여성들이 소위 말하는 '아줌마'라는 신분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당당하고 각자의 재능과 미모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살짝 흥분까지 됐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다가 9월이 생일이었던 클라라 슈만이 떠올랐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써 어릴 때부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던 그녀였지만, 우리에게는 슈만의 아내로 가장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클라라 슈만이 조금만 늦게 태어났다면 20세기 멕시코 출신의 여류화가인 프리다 칼로보다 더 유명해 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프리다 칼로 역시 멕시코 최고의 화가였던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였지만 한편으로 비주류의 조건을 더 많이 소유했던 화가였지 않나 싶다. 예술의 본고장인 유럽이 아닌 멕시코 출신에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던 신체적 장애에다가 성적 취향이 동성애자이기까지 했던 여성인 프리다 칼로야 말로 아웃사이더의 조건을 모두 갖춘 여류화가였음에도 오늘날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가 아닌 독립된 예술가로써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19세기는 여성의 활동이 그리 쉽지 않았던 시대였고 이것이 아마도 클라라 슈만이 로버트 슈만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었음에도 그의 그늘에 가려진 가장 큰 이유일 있다고 본다. 산소를 발견했던 근대 화학의 대부인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부인 (Marie Lavoisier)이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피에르 퀴리의 부인 (Marie Curie)과 같이, 과학자의 아내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위대한 과학자로써 역사 속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클라라 슈만은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남편 슈만이 조금만 정신 줄을 붙들고 사는 정상인이었더라도 클라라와 그의 음악활동에 좀 더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필자는 예술이 과학과 같이 증명된 팩트가 아닌 주관적 판단이 근거가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즉 시대의 유행과 문화와 사회적 배경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나타 형식이 한 물 가고 가곡과 성격소품의 시대가 열린 때의 대중은 당연히 소나타 같은 틀에 박힌 형식의 작품보다는 드라마틱하고 감정이 살아있는 가곡과 성격소품에 귀 기울이고 몰입할 것이다. 클라라 또한 여류 작곡가가 활동한다는 것은 달나라에서나 가능했을 시대에 태어난 탓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위축되고 숨어서 활동하고 남의 이름으로 작품을 세상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기에 작품들도 2%부족함을 느낀다. 여자로써가 아닌 작곡가로서만 당당하게 평가 받을 수 있는 시대였다면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써 능력과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를 클라라는 염원하고 꿈꾸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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