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이야기] 갑사로 가는 길

2018-09-07기사 편집 2018-09-07 08: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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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로 가는 길'이라는 이상보의 수필이 있다. 오래전 국어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한 글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이 글을 따라 갑사로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 글에서 작가는 눈이 오는 어느 겨울날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도중에 만난 남매탑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와 그 감상을 적고 있다.

동학사에서 삼불봉을 향해 등산로를 따라 1시간 남짓을 걸으면 상원암이라는 암자가 나오고 옆으로 두 개의 탑이 보인다. 바로 오뉘탑이라고도 불리는 남매탑이다. 하나는 7층이고 다른 하나는 5층이다. 크기도 모양도 서로 다른 탑이 한 곳에 있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두 탑에 얽힌 설화는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으로서 탑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수필을 쓴 이상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어릴 적 어머니나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어디서 들어봤음 직한 내용이다. 신라 시대의 고승인 상원 스님이 이곳에서 불교에 정진하던 어느 날 호랑이의 목에 걸린 인골(가시)을 빼주는 선행을 베풀게 되었는데, 호랑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한 아리따운 여인을 물어온다. 겨울이 깊어 바로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어서 보살펴 준 후, 봄에 집으로 돌려보내고자 했으나 그사이 스님을 사랑하게 된 여인은 같이 있기를 희망한다. 상원 스님은 불제자로서 혼인할 수 없었으므로 결국 그 여인과 의남매를 맺고 수도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죽은 후 이 둘의 인연을 기리기 위해 2개의 탑을 만들었는데 그 탑들이 남매탑이라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형태와 크기가 다름이 상원 대사와 그 여인의 다름에서 기인하며, 그들의 불교에 대한 지속적인 정진이 불탑이라는 형태로 형상화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렇듯 문화유산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그것이 갖는 의미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그러나 문화유산을 연구하다 보면 하나의 대상에 대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설화와 연구결과 사이에 서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두 탑의 공식적인 명칭은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보물 1284호)"과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보물 1285호)"이다. 탑의 주변에서 청량사라는 글귀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이러한 이름이 된 것이다. 일단 이 두 탑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층수가 5층과 7층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그 기법과 양식도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하나는 백제탑을, 또 다른 하나는 신라탑의 특징을 보여 같은 시기에 같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일부에서는 고려 시대로 그 건립 시기를 추정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실은 앞에서 살펴본 설화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예는 또 있다. 익산 미륵사지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설화에서는 백제 무왕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이곳을 지나던 중 미륵삼존을 만나게 되어 미륵사를 건립한 것으로 되어있다. 더구나 이는 백제와 신라가 서로 전쟁을 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어서 국경을 뛰어넘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지난 2009년,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하던 중 발견된 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의 아내가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적덕의 딸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 역시 설화의 내용과는 다르다.

문화유산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그것에 관한 관심을 더욱 기울이고 몰입하게 하며, 이에 감동한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러한 이야기는 오래전 우리 선조들이 자신이 살던 시대에 해당 문화유산을 보며 느낀 감상을 그 자손들에게 이야기로 담아 전한 것으로 사실 여부를 떠나 오늘날까지 해당 대상에 생명력과 친근함을 부여한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는가. 설화인가, 역사적 사실인가. 나 역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설화 쪽에 더욱 마음이 간다. 문화유산의 역사적인 사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화유산이 이어질 힘을 얻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이를 보고 느끼고 향유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문화유산이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므로. 올여름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무더위로 지쳐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올 것이다. 올 겨울, 함박눈이 내리는 날, 나도 이상보처럼 갑사로 산행을 다녀와야겠다. 한 욱 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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