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찍이 `처음에는 너무 안 닮아 한(恨)이고, 나중에는 너무 닮아 한`이라는 말을 들었다. 너무 안 닮아 한이라는 것은 공부의 진척이 너무 늦다는 말이고, 너무 닮아 한이라는 말은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답답함을 말한다. 이런 예는 지금도 서예를 공부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흔히 엿볼 수 있다.

첫째 법노(法奴)다. 서예는 법을 모르면 거친 들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 같고, 알면 아는 데서 헤어나지 못하곤 하는데 이게 곧 병이다. 기본을 충실히 익혔으면 창신(創新)해야 한다. 즉, 법첩을 통해 배웠으면 제 글씨를 써야 한다는 말이다. 계속 그 안에만 머물면 법첩의 노예가 되어 헤어날 수 없다.

둘째 필노(筆奴)다. 붓의 주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붓에 끌려 다닐 것인가? 붓은 도구일 뿐이다. 붓을 수족처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어야 하는데 부리지 못하고 얽매인다면 역시 붓에 사로잡힌 것이다.

다음은 사노(師奴)다. 초학자는 법첩을 이해하기 위해 스승의 체본으로 걸음마를 시작한다. 이를 보고 그들의 해석법을 배운다.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기본으로 안목을 키워 해석하고 창작의 길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과정일 뿐이다. 껍질을 깨고 나가지 못한 채 스승의 체본에만 의지할 것인가? 기본에 충실하되 하루라도 빨리 자기만의 독창성을 확립해야 한다.

또 하나는 중노(衆奴)다. 대중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작가는 모두 나름의 품성이 있다. 있는 그대로 보여 지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너무 마음에 둔다면 필요 이상으로 꾸미게 된다. 그럴수록 진실은 뒤로 숨게 되고 허상만 드러난다. 이 또한 자유를 잃고 노예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중국 당대 초기 서예가이자 서론가인 손과정(孫過庭)은 서법공부를 `평정(平正)·험절(險絶)·평정(平正)` 3단계로 설명했다. 처음 평정은 법을 충실이 익힘이고, 다음은 개성을 충분히 발휘해보라는 것이며, 마지막 평정은 모든 법을 통회(通會)한 경지임을 말한다. 중간에 말한 험절이 굴레를 내던지고 노예상태에서 탈출하는 시점이다.

이를 실행한 대표 작가가 왕희지(王羲之)다. 그는 처음 위부인(衛夫人)에게 서법을 배워 평정을 이뤘다. 다음 단계인 험절에 이르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긴 숙부의 충고에 힘입어 그는 대담하게 집을 떠나 북방에 있는 여러 비석을 살펴 배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결과 험절의 과정을 거쳐 다시 평정으로 돌아와 통회하게 됐다. 그 단계에서 쓴 것이 난정서(蘭亭敍)다. 그는 이 글씨로 서성(書聖)이란 칭호를 얻었다. 도교도(道敎徒)들의 모임인 계사(契事)에서 몇 잔을 나눴고, 적당히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시집 서문을 썼다. 취중에 써내려가다 보니 몇 군데 틀린 글자가 있어서 다시 수 십 번을 고쳐 썼지만 처음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서법 표준의 한계를 초월, 순간적이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그의 예술 혼이 항상 재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왜 그토록 중시하던 법에서 다시 탈출하라 하는가? 마음과 붓이 상호간 의식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골프에서 채를 잊고 휘두른 스윙에서 공이 멋지게 날아가듯, 글씨도 그렇다.

마음은 손, 손은 마음, 손은 붓, 붓은 손을 의식하지 않았을 때 점획은 살아 움직인다. 방법은 느리게 또는 빠르게 긋거나, 굵게 또는 가늘게 하며, 이에 절주감(節奏感)을 더하여 무한한 공간을 적절히 분할하는 것이다. 이를 포백(布白) 또는 장법(章法)이라 한다. 이 법은 하늘의 은하 배열을 모범으로 삼는다. 은하는 하늘의 법을 초월하여 자연스럽게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가 하늘을 자유롭게 주유(周遊)하고, 사자가 들판을 포효(咆哮)하고, 물고기가 물에서 유영(游泳)하듯, 서예도 법 안에 있지만 자유로워보자.

송종관<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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