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오는 동안, `예술가로 산다는 것`(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는 `소설가의 각오`(마루야마 겐지, 문학동네)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현대문학)처럼 작가 본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세이초의 소설을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그의 예술관이나 인생관이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책은 일본의 막부 시대에 살았던 화가나 조불사, 다도인 같은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들은 복잡한 정치 상황과 맞물려 단숨에 당대의 사조가 되었다가 권력의 교체기에 낙마하는가 하면, 권력자와의 불화 끝에 그리고 그에 맞서 예술의 자존심을 세우다가 처형당하기도 한다. 때로는 흐름이 알맞게 찾아와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세월을 이길 수 없어 추락하는 사람도 있다. 세이초는 짧게 남아있는 기록을 바탕으로 그 예술가의 심정을 헤아리며 글을 썼다.

나는 화가였던 이와사 와타베에의 삶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무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화가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특별한 스승도 없이, 자신의 화풍을 고민하면서 오랫동안 궁핍하게 살았다. 결국 와타베에도 빛을 보는 날이 왔다. 얼마나 기뻤을까. 하지만 기회는 너무 늦게 찾아왔다. 에도 막부의 부름을 받고 환갑이 되어 길을 떠난 그는 옛날에 살았던 마을에 이르러 이렇게 탄식한다. `어느 새 늙어버린 몸이 되었구나.`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예술에 대해 갈증을 느꼈으며 현재에 만족하지 않았다. 항상 경쟁자를 의식했고 때로는 질투에 눈이 멀었다. 하지만 그건 더 잘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그래서 불면의 밤을 보냈으며, 상처를 받기도 했다. (사실 질투하는 법을 잃어버린 예술가는 은퇴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명제를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평생 예술을 하며 살았으니까. 예술가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건 어쨌거나 정말 대단한 일이다. `dandy life!` 완전 멋쟁이의 삶이에요. 오세섭 독립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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