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포부를 밝혔다. 온 국민이 고통으로 신음하던 일제 강점기에 안중근 의사는 옳은 일을 하려고 자신을 희생해 죽음을 당했다. 안중근 의사의 살아온 과정은 물론 의거 후 단지 형식에 불과했던 재판 과정에서나 사형을 당할 때까지의 삶은 더할 수 없이 의연했다.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 역에서 술에 취해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고 숨진 한국 대학생 이수현의 죽음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수현은 전혀 모르는 일본인을 구하려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것이다. 이태석 신부는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는데 신학교에 진학하여 신부가 된 후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선교 봉사활동을 하다가 대장암으로 48세의 나이에 선종(善終)했다. `이태석 신부 세상을 울리다`는 TV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나도 눈물 흘리며 그 방송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는 희망이 없던 아프리카 수단의 가난한 마을 아이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희망으로 일어서게 했다. 이렇듯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와 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따로 떼어 말하기 어렵다.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또한 삶의 마무리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지만 이렇듯 숭고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가볍지 않은 거룩한 죽음을 배운다.

출생과 죽음은 자기 선택의 경계 밖에 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살다 죽을 것인가 하는 내용이다. 사람마다 죽음을 맞는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죽음을 맞는 내용은 선비 또는 군자의 죽음과 소인의 죽음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군자의 죽음은 생존본능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는 자신만의 목표를 찾고, 그것을 이룩하려고 노력하는 인생을 살다가 가는 죽음이다. 무엇보다 부끄럽지 않은 죽음이어야 한다. 반면에 소인의 죽음은 오로지 생존본능을 따라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만 충실히 살다가 가는 죽음이다.

그러나 군자의 죽음은 고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률, 노인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른 사람과 소통 없이 살다가 고독하게 사망하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다. 갈수록 1인 가구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적절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외롭게 고독사를 맞이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외면과 참담한 고통가운데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과 그런 노인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다. 이제 전 사회적이고 전 국민적인 삶에 대한,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문화운동 전개와 환경조성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약자를 배려하고 나눔이 있는 사회, 경쟁과 화합이 공존하는 사회, 원칙이 있으며 공정한 사회, 언제든지 노력하면 기회를 얻는 사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는 행복을 목표로 삼기보다 자신이 선택한 길의 여정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성공 지향적 삶이 아닌 가치 지향적 삶을 이루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행복한 죽음 또한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해 가는 행복한 삶의 과정에서 얻어진다고 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은 죽음이다"며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슴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은 생명의 욕구를 넘어 생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생동안 자신이 선택하고 추구하며 살아왔기에 후회나 남에 대한 원망이 없는 마무리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가라. 내일 죽을 것처럼 사랑하며 살아라.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라. 그러면 행복한 죽음도 맞이할 수 있다. 행복한 죽음은 행복한 삶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김광환 건양대 병원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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