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수도꼭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나 역시 우리집 수도꼭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지냈는데, 어느 날 세면대 물이 잘 빠지지 않아서 기다리면서 물끄러미 수도꼭지를 바라보게 됐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우화가 떠올랐다.

옛날 물이 귀한 사막 마을의 부자 한 사람이 유럽으로 여행을 가게 됐다. 근대적인 도시화가 진행된 그곳의 숙소에서 그는 꼭지를 돌리기만 하면 물이 펑펑 나오는 걸 보곤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며칠 후 숙소를 나올 때 그는 돈을 얼마든지 줄 테니 수도꼭지 몇 개만 떼서 자기에게 팔라고 했다. 그 수도꼭지만 있으면 사막 마을에서도 물이 펑펑 쏟아질 거라 믿었던 것이다.

우화는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위해 꾸민 것이므로 위 이야기가 풍자하고 있는 대상도 자유롭게 바꿔볼 수 있겠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대입해 보자. 스마트폰이라는 수도꼭지를 동작하도록 하기 위해 투입되는 자원과 필요한 인프라와 수많은 국제적 약속 등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이 없으면 그 개략적인 구조와 기본적인 작업 순서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화의 주인공인 사막 마을 부자가 수도 시스템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것과 마찬가지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리지만 실제 어떻게 그러한 혜택이 제공되는지 제대로 알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혜택은 다양하고 작동 구조는 복잡하며 많은 사람들은 혜택이 제공되고 있는 한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수도꼭지에 내가 하는 일을 대입해 보았다. 나를 비롯한 공공기관 연구자 집단을 수도꼭지라고 한다면 여기서 나오는 물은 다양한 형태의 연구 성과가 되겠다. 일반 국민들은 과학기술 성과를 내기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의 구조와 작용을 잘 알지 못하고 그 혜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받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연구자 스스로도 하는 일의 의미나 목적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과업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물이 잘 나오는 동안에야 수도꼭지를 비롯한 수도 시스템에 관심은 적기 마련이다.

문제는 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다. 대략 10여 년 전부터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는 연구 성과와 과학기술 경쟁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도 왜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을 못하는지 질타와 반성이 섞인 글도 많이 보았다. 아마 나오는 물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은 아니라도 물을 쓸 데가 많아지다 보니 기존의 수도로는 만족스럽지 않게 돼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여론에 따라 많은 정책과 대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모두 수도꼭지에 집중돼 있고 기껏해야 건물 수도관 교체 정도에 그쳐있다는 느낌이다. 좀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땅을 파서 새로운 수도관을 묻는 수고롭고 오래 걸리는 일에 나서서 땀을 흘려주어야 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복잡하고 미묘한 세상일을 간단한 우화에 빗대어 구체적인 이해와 해결책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화는 적어도 한 가지 핵심적인 교훈을 전달하는 데는 매우 유용하다. 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무턱대고 수도꼭지부터 교체하고 보는 어리석은 행동은 말아야 한다. 수도배관을 비롯한 전체 수도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면 아무리 좋은 수도꼭지를 가져다 붙여 놓아도 달라질 것이 없다. 전반적인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 긴 호흡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수한 연구 인력을 유치하고 투자만 넉넉히 하면 노벨상급 연구 성과가 당장 튀어 나올 것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우화 속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되겠다. 수도꼭지만 번듯하게 바꾸고 우리는 더 많고 좋은 물을 위해 이만큼이나 기여했다고 생색내는 사람도 없으면 좋겠다. 이동훈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광학표준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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