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에서 어르신들이 배낭여행을 한다는 프로그램 예고를 보면서 `어떻게 여행을 다니실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제작진들이 `어떤 구성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이야기 구성을 위한 편집을 하는가`에 대한 흥미가 더 많았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고, 그 프로그램이 `꽃보다 할배` 이다.

`꽃보다 할배`에 나오는 유럽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도시마다 성당과 광장, 그리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서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넓은 도심의 도로와 예전의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을 중심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 골목에 있는 아주 오래된 가게들을 보면서 현대식으로 바뀌는 우리들의 마을을 생각하게 되었다.

유현준 교수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어 보면 걸을 수 있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역과 역 사이에 공원이 만들어지고, 그 사이를 걸을 수 있게 한다면 지역의 갈등과 불균형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유현준 교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걸어 다니는 골목길이 자동차로 인해 넓어지고, 자동차가 많아짐으로써 불편함이 생기고, 본인의 집에 좀 더 가까이 주차하기 위해 불법주차가 만연하고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조금 더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과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어느 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그 지역 음식도 먹을 겸 해서 들른 적이 있었다. 내 추억 속에 그 마을은 정말 걷고 싶은 마을이다. 하지만 마을을 지나는 중심도로는 차가 가득했고, 걷기보다는 차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정비를 통해 간판을 만들어 놨지만, 노포(老鋪)의 간판이 건물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말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오래된 마을이라서 정말 살기 힘들었을까`, `관광객인 나의 이기적인 생각일까` 하는 마음으로 그날 조금은 우울하게 돌아온 적이 있다.

많은 마을이 새롭게 정비하려고 하고 있다. 원도심을 그냥 놓아둔 채 주변의 발전에 따른 도심 공동화 현상에 걱정하고 있다. 도심 정책은 그냥 놓아둔 채 주변에 아파트를 짓고, 새로운 지역을 만들고, 지금은 그 도심을 떠난 사람들 때문에 새로운 정책과 거대한 건물을 짓는 데 소모하고 있다. 이러면 `인구유입이 생길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걷고 싶은 마을, 걷고 싶은 지역을 통해 지역의 이야기, 문화, 전통들이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릴 적 기억에는 시골 마을을 들어서면 아주 큰 나무 밑에 동네 어르신들이 나오셔서 이야기하고 계시는 모습을 종종 봐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걸을 수 있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주 복잡한 도시라도 기존의 도로를 중심으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걸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제주도의 `올레`를 보면 도심으로 지나는 길이 있다. 이 도심으로 지나는 길에는 시장이 있고, 전통건물과 현대적 건물이 공존하고 있다. 제주도에 있을 때 제주시의 구도심을 좋아했다. 작은 가게들이 있으면서도 시장과 가깝고, 기생화산인 `오름`도 있어서 택시나 버스를 이용하는 거리도 그냥 걷게 되었다. 옆의 상점을 구경하면서 밤에 걸었던 기억이 있다. 잠시 쉬어갈 수 있으면서도 구도심의 불빛에 의지해 그냥 걸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아파트 벽에는 제주의 옛 선인들과 유배를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으면서, 작은 의자들이 비치되어있고,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편의점도 있었다. 그리고 구도심의 노포들을 보면서 `여기 이런 곳이 있네, 다음에 들려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은 지역마다 다양한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해변 길, 둘레길, 역사적 이야기가 있는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길이 아닌 새로운 걷고 싶은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지금 필자도 `개인적인 이기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걸으면서 `다음에 들려야지`라고 생각되는 길이 많이 없다. `이 길을 걸었네!`라는 생각으로 걸었다. 정태섭 청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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