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현금 800만 원을 들고 서울행 KTX에 탑승한 20대 여성이 경찰 추적을 통해 피해를 모면하게 된 사례가 소개된 바 있었다. 당시 이 여성은 서울 금융감독원 앞에서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만나 현금을 전달할 요량으로 기차를 타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고, 일체 연락도 받지 말라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바람에 경찰이 피행 여성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한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이 사건이 요즘 보이스피싱의 무서운 기세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금감원이 집계한 피해액 기준으로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430여억 원으로 전년대비 26%나 증가했다. 보이스피싱 관련 피해구제제도가 도입된 2011년부터 작년까지 피해구제액도 2776억 원에 달한다. 이제 보이스피싱 같은 금융사기는 사기에 당한 일부 개인들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사회 문제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고도화 지능화되는 사기범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뿐만 아니라 사전적으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지자체 등 관련 기관의 관심과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반갑게도 지난 4월 대전시와 대전시의회는 `전기통신 금융사기 피해예방 지원 조례`를 제정해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최초로 전기통신 금융사기 예방 및 지원에 관한 지자체의 역할을 분명히 했다. 이 조례에서 대전시는 관련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효율적인 피해 방지 시책을 추진하고, 지역 금융회사가 시민 등의 피해 방지 활동에 적극 협력할 것을 명문화했으며, 시민은 지자체의 정책에 협력하고 피해 방지를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함을 명확히 하는 등 금융사기 예방을 위한 각 주체별 역할을 규정했다. 또한 자문기구로 시의회 의원, 관련 기관장, 시 관할 구역 소재 금융회사 대표, 민간단체 대표 및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는 `전기통신 금융사기피해예방지원협의회`를 설치·운영하면서 피해 예방 교육·캠페인, 피해 예방 지침 개발 및 보급, 피해 현황 관리 및 피해 예방을 위한 민·관 협력에 관한 사항을 주관하게 해 피해 예방을 위한 실행력도 확보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의 수법이 고도화되는 만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금융소비자를 둘러싼 건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한 시기에 대전시가 선도적으로 조례를 제정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특히 보이스피싱 같은 금융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민·관이 함께 책임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담았다는 측면에서 조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조례의 충실한 이행일 것이다. 선언적 의미로서의 조례가 아닌 피해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는 실천적인 도구가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조례 제정의 노력만큼이나 이행을 위한 각별한 노력과 관심이 요구된다.

더불어 대전시 조례 제정에 발맞추어 다른 16개의 광역자치단체도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 특히 충남도와 세종시 등 대전시와 인접한 광역자치단체가 관련 조례 제정을 통해 대전시와 협력한다면 관내 시민 및 도민들 모두 보이스피싱으로부터 좀 더 안전한 금융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윤규 금융감독원 대전충남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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