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4일 뇌물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25년과 벌금 200억 원을 선고하였다. 1심보다 징역은 1년, 벌금은 20억 원이 더 늘어난 것이다. 재판부는 1심에서 인정하지 않은 삼성의 영재센터 지원금 등을 뇌물로 인정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1심보다 넓게 보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내려진 판결은 단순히 박근혜 개인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훼손한 이들에 대한 역사적인 사법적 심판의 의미를 가진다.

이번 판결에서 가장 의미 있는 대목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승계작업이 포괄적 현안으로서 존재하였고, 이에 관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던 사실을 인정한 점이다. 이 승계작업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해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에 대하여 사실상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이다. 그리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각종 정황과 증거에 비추어 승계작업을 묵시적으로 청탁한 사실은 넉넉히 증명되었다고 보았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재판부가 삼성의 미르·케이 재단에 대한 재단출연금 204억 원에 대해서는 제3자 뇌물죄의 성립을 부인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통령과 같은 최고위공직자가 직접적으로 뇌물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미르·케이 재단과 같이 별도의 재단법인을 결성하고 이에 따른 출연금 및 기부금을 재벌대기업으로부터 사회공헌명목으로 받는 것이 무죄가 된다는 것은 쉽게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인지는 불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판결 법리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우리 사회는 새로운 정경유착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울러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법부를 대하는 태도도 지적될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항소심 과정 전반에 걸쳐서 재판에 불출석하는 등 사법부에 대한 불신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탄핵을 당했던 이로서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사과와 책임도 도외시하는 것이자, 법치주의를 끝까지 부정하는 것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는 최근 의혹이 밝혀진 박 전 대통령의 양승태 대법원체제와의 재판거래, 외압행사 등의 정황에 비추어 볼 때, 박 전 대통령이 3권 분립을 무시하고 사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의 재판이 단순히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악용하고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중대하게 훼손한 일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이로서의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감마저 저버린 행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된 재판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횡령과 뇌물 액수, 안종범 수첩에 대한 증거 능력 등에 관하여 서로 어지럽게 갈려있는 법리들 때문에 여전히 국민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사법농단 사태로 인하여 국민들이 사법부에 대해 깊은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법원은 다시금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계기로서 박근혜 및 이재용 재판에 대한 정확하고 속도감 있는 결과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법원은 최근 새롭게 제기된 강제징용 등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법부를 압박해 재판거래를 한 의혹에 관해서도 진실을 밝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모두 불행에 빠지게 했던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정치적 심판은 탄핵을 통해서 일단락 되었지만, 사법적 심판 과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박근혜·이재용 등에 대한 사법적 심판은 우리 헌정질서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인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했던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 엄중하게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향후 대법원의 판단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영선 법무법인 세종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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