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초행길에 길을 잃었을 때는 동네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음료를 하나 사거나 주유를 조금 하고 길을 물어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오늘날 이런 풍경은 사라진 듯하다. 초행길은 물론 먼 나라로 여행을 갔을 때도 네비만 있으면 지도도 필요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 행여 민폐를 끼칠 이유도 없어진 셈이다. 이와 같이 삶이 편해지고 시행착오의 시간 낭비도 줄일 수 있는 편리하고 정확한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문화와 예술은 부정확하고 비효율적이며 비실용적인 낡은 유산 같이 여겨지고 외면당하고 있다.

최근 필자가 읽은 `문화예술 교육은 왜 중요한가(The Virtuoso Circle, Why Creativity and Cultural Education Count)`에서 작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류를 선진국과 후진국 국민으로 나누는 기준은 창의력이며, 창의력을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여가 생활을 즐기는 차원에서의 문화 예술 활동이 아닌, 산업과 경제 등 인류의 삶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창의력이며 이것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내재된 문화와 예술 활동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의적 산업은 돈과 일자리 뿐 아니라 국가의 문화와 정체성에 독창적이고 지적인 우월함은 물론 사회의 활기를 불어넣어 경제적 성공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요인이라 믿기에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과 중국, 미국은 문화예술교육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문화생활도 방학 숙제나 수행평가로 해가는 일이 많다. 다양한 공연이나 전시회를 다녀오는 숙제가 주어지지만 정작 많은 학생들은 학원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고 이런 숙제는 학부모의 몫이다. 이마저도 공연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지인을 통해 표만 얻는 사례도 흔해, 필자도 표를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문화예술은 공연과 미술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류학은 물론 종교, 건축학, 윤리, 철학, 음악, 미술 문학을 다 포함한다. 이미 윤리라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눈에 보이는 이익이 없기에 이러한 문화예술교육은 이루어지기 힘든 현실이다.

사교육에서 무한 반복을 통해 익힌 수학, 문학, 과학 지식을 습득하듯이 작곡가의 삶과 시대적 배경, 작품과 관련 있는 문학 작품 등을 전혀 모른 체 오로지 배운 대로 기계적인 반복 연습만을 통해 연주하는 곡을 청중들은 공감하고 감동받을 수 있을까. 이해와 깊이가 배제된 연주는 그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지도는 물론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고 오로지 목적지만을 입력해 네비의 지시대로만 운전하면 되는 오늘날 우리는 편리함은 얻었으나 목적지를 가면서 주변을 살펴 보며 과정을 음미하고 또한 시행착오를 통해 더 깊이 있는 지력을 키우는 힘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베토벤이 "인생은 긴 여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우리의 문화와 예술 교육은 정답을 가르치기보다는 생각하는 힘과 방향을 기르고 제시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창의력은 궁금증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궁금증은 충분한 지식과 이해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빠른 길보다는 잠시 멈추어 호흡하고 느끼고 생각하며 가는 길이 우리의 가는 길이기를 바란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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