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money)과 화폐(currency)는 과연 똑같을까? 대부분 일상에서 이 두 단어를 따로 구별해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갑자기 이렇게 묻는다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돈과 화폐는 본질에서 다르다.

옛날 물물교환 시절 물건의 가치가 서로 달라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은 모두가 인정하는 동일한 가치 기준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금화와 은화였다. 이렇듯 돈은 오랜 시간 지속되는 가치를 저장하고 있다. 반면 화폐는 그냥 특수인쇄 된 종이일 뿐이다. 처음 종이화폐는 사람들이 금 세공업자에게 자신의 금화를 맡기고 받은 보관증에 불과했다. 가치를 액면에 숫자로 표기하고 간편한 휴대와 분실 위험이 적다는 장점 등으로 점차 상용화됐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금 사용하는 화폐는 정부의 신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차용증이라 할 수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대구로 피난 간 한국은행은 그 해 8월 17일 처음으로 1,000원 권과 100원 권 두 종류의 화폐를 발행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은행권이다. 이후 여러 번 화폐 개혁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법화(화폐)는 지폐 4종(천원, 오천원, 만원, 오만원)과 동전 6종(일원, 오원, 십원, 오십원, 백원, 오백원) 등 모두 10종에 달한다. 그러나 법적인 통용력을 가지고 있는 화폐는 생각보다 종류가 훨씬 많다. 한번 발행된 화폐는 특별한 법적인 근거가 없는 한 통용력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전국에 지역화폐 붐이 일고 있다. 각 지자체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매출 증대, 자금 역외유출 방지, 일자리 창출 등을 내세우며 지역화폐 발행 조례를 제정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종이 상품권, 카드 상품권, 모바일 상품권, 마일리지 등 종류도 다양하다. 자체 개발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화폐도 등장했다. 심지어 경북 고령군청 공무원들은 매월 급여(기본급)의 6%를 고령사랑상품권으로 지급 받기도 한다. 엊그제 경기도는 도내 31개 시·군에 지역화폐 발행비, 할인료, 플랫폼 이용료 등 4년간 총 29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통 큰 약속을 했다.

이런 기류 때문인지 충남도도 지역화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고향사랑상품권을 도입해 내년부터 각종 복지혜택과 청년수당 등을 모바일로 지급하고, 나아가 아동수당, 청년수당, 생활임금, 노인 일자리 비용 등 활용 범위를 늘려나갈 방침이다. 또 스마트폰만 있으면 QR코드 방식으로 어디서든 간편하고 쉽게 지급결제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도는 이를 통해 지역 소상공인에게 수수료 면제 등 금용서비스를 제공하고, 지급결재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이 도내 경제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지역 내 고부가가치와 고용창출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에 수반되는 부작용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역화폐는 말 그대로 일정 지역 내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이나 서비스 교환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법정화폐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렇다 보니 가맹점 제약, 법정화폐 교환 불가 등 소비자의 불편과 소비선택권을 제한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화폐 발행으로 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위·변조 위험, 소비자 분쟁 등에 대한 대책도 뒤따라야 한다. 지역 간 거래를 약화시켜 오히려 국가 경제발전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천시 최초 지역화폐인 강화사랑상품권이 발행된 지 3년 6개월 만인 지난 달 폐지된 것도 다 이런 이유다.

별다른 준비 없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접근했다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지역화폐 발행에 따른 기대 효과와 관리비용, 손실률 등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계량화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지역화폐 발행만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유일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송원섭 충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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