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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재밌는 문화재] 고려 청자 의 세계

2018-08-24기사 편집 2018-08-24 07: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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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송(南宋) 태평노인(太平老人)이 쓴 '수중금(袖中錦)에는 고려청자에 대해 '고려비색(高麗秘色) 천하제일(天下第一)' 이라고 적고 있다. 자기를 처음 발명하고 당시 전 세계에 수출할 만큼 뛰어난 청자문화를 꽃피운 중국에서도 고려의 청자를 최고로 여겼을 만큼 고려청자는 뛰어났다.

당시의 고려청자는 아름다운 색, 뛰어난 선과 형태의 조형, 고도의 기술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고려 공예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데, 일상 생활용기 뿐 아니라 기와, 베개, 의자 등 다양한 종류와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것에다 음각(陰刻), 양각(陽刻), 퇴화(堆花), 철화(鐵花) 등 다양한 장식기법이 더해져 청자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었다.

청자의 여러 장식 기법 중에서도 '압출양각(壓出陽刻)'이 있다. 이 기법은 흙으로 만들어 구운 문양 틀(도범, 陶範)을 사용해 그릇에 문양을 찍어내는 것으로 고려 중기 12-13세기 때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 기물의 내면이나 외면을 문양 틀에 붙였다가 떼어내기 때문에 문양과 형태를 동시에 만들어 낼 수 있어 제작 공정상 쉽고 편리하며, 시간이 절약되는 등 많은 장점이 있다. 또한, 여러 차례 사용이 가능하고 문양 틀을 사용해 일정한 크기와 문양의 제품을 만들 수 있으므로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기술이다.

기본적으로 문양 틀을 사용하기 때문에 당시 최고급의 청자를 생산한 가마인 강진이나 부안과 같이 숙련된 장인이 없는 곳에서도 이들과 유사한 청자를 표본으로 하여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이점이다. 상감기법과 같이 고급 장식기법을 재현할 수 없는 지방의 가마에서는 압출양각이 보다 오랫동안 지속하였던 것은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고려 중기(12-13세기) 청자가마는 강진과 부안을 시작으로 용인, 여주, 강릉, 부산, 공주 신영리, 대전 구완동, 음성 생리, 진천 죽현리·구암리 등 충청도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 분포한다. 이 시기 압출양각 기법은 실제로 청자 생산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위의 여러 가마에서도 확인된다. 대전 구완동 가마에서는 발과 접시의 내면을 찍기 위한 꽃무늬가 새겨진 틀이 발견되기도 했다. 압출양각이 장식된 청자들은 고려 전역의 사찰, 무덤, 건물지에서 발견되고 중국, 일본에서도 출토됨에 따라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소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압출양각기법은 중국의 경우 북송(北宋) 시기에 가장 발달하고, 유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는 이러한 중국의 도자문화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장식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점차 고려만의 독자적인 문양을 만들고 기법을 적용했다. 이 기법은 처음에는 발, 완, 접시 등의 일상 생활용기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전라남도 강진 청자 가마터의 경우 부분적으로 향로 등 특수한 기종의 청자에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문양이 더욱 다양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후 고려의 내외적 상황으로 이들 가마에서 지속해서 청자가 제작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압출양각된 청자는 고려 중기 팽창된 도자기의 제작 상황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이다. 이러한 압출양각은 청자의 다채로운 문양을 표현하는 예술성과 함께 청자의 상품성을 높이고 전국적인 대량생산에 이바지한 꽤 쓸모 있고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명옥 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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