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고, 거기서 자아를 성찰하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글을 남겨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 내용 중에는 `강제수용소 안에서의 예술`에 대해 쓴 글이 있다.

수용소에 있던 유대인들은 즉석에서 무대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고, 연극을 하고 춤을 췄다고 한다. 그들은 하루 양식을 포기하고서라도 수용소 감시자의 눈을 피해 목숨을 걸고 예술을 즐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용소안에서 예술행위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대체 예술의 어떠한 힘이 내일의 기약도 없는 그들에게 예술을 즐기게끔 했는가. 어쩌면 그들은 예술 활동을 통해 위로를 받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수용소에서 예술과 관련된 행위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은 너무나 고된 현실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과 예술사이에 놓여있는 간극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예술행위를 하거나 예술을 즐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예술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한다. 예술작품 및 활동 등을 통해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예술은 사람을 감동시키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위로받고 공감을 느끼며, 자신을 이해한다. 또한 예술은 개개인에게 영감을 주며 인간의 의식을 성장시킨다. 철학가이자 소설가인 알랭드 보통은 예술이 오브제로써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도 했다. 사람들이 예술에 매료되는 이유는 이처럼 다양하다.

사실, 예술은 배고픔이나 수면 등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필수적인 산물을 생산하고 기본욕구가 이루어지면 인간은 보다 차원 높은 것을 추구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예술을 잉여생산물이라고도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국가가 문화예술사업에 지원하는 것에 대해 먹고 살기도 힘든데 괜한 예산낭비라고 보는 시선들도 많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를 경제적 논리로만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정부가 적극적으로 문화예술을 지원하여 예술적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여 문화선진국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즉, 문화예술의 힘 곧 `소프트 파워`를 갖는 것이 중요한 시대이다.

예술을 단순히 개인적인 소비의 관점이 아닌 아름다움을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공적 관점으로의 진지한 사유가 필요한 그 시작에 우리는 서있다. 장은숙 연극배우·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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