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큰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박병선(62·대전 동구 천동)씨가 큰아버지에게 주려고 챙긴 할머니의 유품인 비녀. 사진=박병선씨 제공
북의 큰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박병선(62·대전 동구 천동)씨가 큰아버지에게 주려고 챙긴 할머니의 유품인 비녀. 사진=박병선씨 제공
70여 년의 세월을 견뎌 그리운 가족과 재회를 앞둔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이 코 앞에 온 상봉을 두고 뜬 눈으로 지새고 있다.

대전에서는 평안남도 대동군 출신 이관주(92·대전 대덕구 송촌동) 옹이 북측의 조카를, 박병선(62·동구 천동)씨는 북측의 큰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남측에서 상봉을 요청한 이 옹은 20일부터 22일까지, 북측에서 만남을 요청한 박 씨는 24일부터 26일까지 2박 3일동안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그리운 가족을 만난다.

상봉일 하루 전인 19일 상봉자들의 집결 장소인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 도착한 이 옹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20살 때 북에서 남으로 넘어온 이 옹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953년 38선으로 남북이 갈라지면서 가족과 기약없는 이별을 당했다.

지난 50여 년 동안 이 옹은 수 차례 적십자사에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했지만 연락을 받지 못했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연락이 닿았다.

당초 이 옹은 형을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상봉을 신청했지만 형은 이미 작고한 뒤였다. 형을 대신해 조카 두 명이 북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옹은 북의 조카들에게 줄 옷과 생필품을 직접 준비했다.

아버지인 이 옹을 모시고 함께 상봉에 나선 아들 이세영(61)씨는 대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버지가 밤잠을 못 이루실정도로 설레하신다"며 "평생 소원인 북의 가족을 만난다는 생각만으로 뜬 눈으로 지새고 계신다"고 말했다. 아들 이 씨도 "막연히 사촌지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흥분된다"며 "어떻게 살고 지내는지 물어볼 말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북측에서 온 이산가족신청으로 북의 큰아버지 박범태(87)씨를 만나러 가는 박 씨는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큰아버지가 찾던 형제 중 2명은 이미 작고했다. 혈육은 이제 박 씨와 그의 고모, 막내작은아버지가 유일하다.

박 씨는 24일 큰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할머니의 유품인 비녀와 가족사진을 챙겼다. 북의 큰아버지에게 주기 위해서다. 충북 옥천에서 자란 큰아버지는 18살 때 한국전쟁서 퇴각하던 인민군에 의해 북으로 끌려갔다.

박 씨는 "당연히 사망한 것으로 생각해 호적까지 정리했는데 이번에 연락이 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반가웠다"면서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사진과 어머니 유품으로나마 달래시라고 선물로 챙겼다"고 말했다.

박 씨는 큰아버지와 함께 나오는 사촌들을 위해 홍삼, 내복, 점퍼, 양말, 생필품 등도 차곡차곡 가방에 챙겼다. 그는 "큰아버지가 북으로 끌려갈 때 고모가 마을 서낭당 입구에서 보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면서 "큰아버지가 사촌과 함께 나온다고 들었는데 형일지 동생일지 모르겠지만 친동생을 보는 것처럼 기다림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아닐지 모르지만 그 순간이 다 인 것처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오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남북이산가족상봉에는 대전·세종·충남에서 모두 5명이 이산가족을 만나러 북으로 간다.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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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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