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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시골 아줌마들, 가수 싸이의 콘서트에 가다

2018-08-15 기사
편집 2018-08-15 08: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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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폭염이 시골마을을 덮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무력하고 무기력하게 더위에 굴복을 하고 집안에서 에어컨 밑으로 숨어 지내는 날들이다. 밭일에 바쁜 날들이지만 시골 마을 들판에는 사람 그림자도 구경하기 힘들다.

"꺄, 드디어 나 싸이 콘서트 티켓 구했다. 안 가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우린 꼭 가야해"

3년 동안 비어 있던 우리 옆집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야말로 차도녀, 차도남 스타일의 부부였다. 그 차도녀가 나와 동년배여서 본의 아니게 시골살이의 길라잡이가 되어 주게 되었다.

한 달 전부터 싸이 콘서트에 꼭 가야한다며 티켓팅 하는 날을 기다리는 그녀가 신기해보였는데 실제로 그 비싼 티켓을 내 몫까지 샀다는 것이다. 콘서트 이틀 전에 취소 된 티켓을 겨우 구했다는 그녀는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이었다. 아직은 도시를 다 내려놓고 오지 못한 그녀였다. 그녀가 떠나온 도시를 향한 향수를 그런 식으로 해소하겠다는 거였다.

가까운 도시를 자주 들락거리고 온라인 소통 창구를 다 열어 놓고 사는 것으로 시골 살이에서 부족한 문화생활을 채워가며 살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가수의 콘서트에 가볼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던 내게 인기 가수의 콘서트는 문화 충격이었다.

시골 살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 것 중에 하나는 문화적 열패감이다. 사람들은 시골에 살게 되면 불편함과 더불어 문화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온라인으로 온 지구가 연결되어 버린 현실에서 문화생활이란 시간과 비용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틀린 것은 시골에 살다보면 문화생활에 무뎌지기는 한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문화적 충격을 덜 받다보니 관심사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월드 스타가 된 가수 싸이의 콘서트가 대전에서 열리던 날, 우리 50십대 아줌마 둘은 마음만은 소녀 감성을 가득 채우고 대전으로 떠났다. 모처럼 짧은 반바지에 티셔츠, 스냅백 모자를 쓰고 도착한 월드컵 경기장은 인산인해의 파란색 물결이었다. 그날의 드레스 코드라는 파란색 옷을 차려입은 인파 속에서 나는 얼이 빠질 것 같았다. 시골에서는 어리바리하던 옆집 차도녀는 그 인파 속을 날다람쥐처럼 헤치고 다니며 예매한 자리를 잘도 찾아내었다. 이미 가수 싸이가 등장해서 한 곡을 시작했고 경기장 안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자리를 찾은 것만으로도 안도하던 순간 차가운 물줄기가 날아와 우리를 덮쳤다. 그 위로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옆집 차도녀는 물 만난 물고기였다.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고 가수 싸이와 일체가 되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의 클라이막스인 순간마다 쏟아지는 물대포를 온 몸으로 맞으면서도 펄펄 날고 있었다. 어느새 나도 그녀를 따라, 싸이를 따라서 경기장 안의 모든 사람들을 따라서 소리를 지르고 선무당처럼 모둠발을 뛰고 있었다. 콘서트 장 안은 흠뻑 젖은 파란 종족들이 해변에 모여서 파티를 하는 날 같았다. 우리가 두고 온 젊은 날의 혈기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지난 세월 속에 묻어버린 우리의 푸른 시절을 가수 싸이가 찾아주고 있었다. 돌아다보니 우리처럼 푸르렀던 젊은 날을 찾아 온 우리 또래로 보이는 중년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나이를 잊고 체면을 내려놓은 모든 인간들이 얼싸 안고 어울려 가수 싸이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본 가수 싸이는 방송 화면에서 본 것보다 훨씬 진솔했다. 굳이 분장을 하지 않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호감적이지 않은 얼굴과 이마의 주름살, 무대 의상 위로 볼록하게 솟은 감추려 하지 않은 뱃살이 그를 월드 스타 '싸이' 이전에 인간 '싸이'로 보이게 했다. 그가 쏟아내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노랫말도 처음에는 낯설지만 들을수록 공감을 끌어낸다. 틀에서 벗어나면 어떠랴, 당신만의 것을 존중한다, 그냥 그대로를 즐길 자유를 외치는 가수 싸이한테 얻는 편안함과 위안이 그의 콘서트에 있었다.

아마도 나이를 들어가는 현상 중에 하나는 대중문화에서 관심이 멀어지는 것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쉽게 말해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대중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 시골에 살기 때문에 문화생활에 좀 민감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옆집 차도녀와 가수 싸이가 몰고 온 바람이 시골 살이와 더위에 지친 일상에 신선한 일탈이 되었다. 오창경 해동백제 영농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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