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우화가 있다. 최근에 어느 이름난 작가가 자신의 신작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발언을 변호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끌어댔다. 아무도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체를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용기 있게 소리친 우화 속의 `어린이`가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 어린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모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우화란 것이 조금만 상황이나 해석의 맥락이 바뀌어도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다. 이것은 선배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다. 지하철에서 흑인 여럿이 타고 가는데 앞자리에 앉아있던 한 어린이가 갑자기 소리를 쳤단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그 어린이처럼 말이다. "앞에 너무 깜깜해!!" 그 흑인들이 한국말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린이의 `순수한 용기`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이 됐으리란 걸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린이의 순수함이 한 순간에 무모한 도발이 되어 상대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겨우 서너 살짜리 어린이를 비난하기 어렵겠지만 어린이가 작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가 담고 있는 속뜻을 몰라서가 아니다. 분명 작가에게 그런 `순수한 용기`가 필요한 것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작가정신`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고 묻고 싶은 것이다. 내가 발언하는 것이 어떤 사회적 파장과 효과를 가져 오는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순수함`은 원치 않아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는가. 그것도 작품이 아닌 자연인이자 공인으로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 작가가 그동안 역사적 소명의식과 정의감으로 일궈온 문학적 성과나 사회적 실천행위를 모조리 부정하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 훌륭했고 이번에 낸 신작을 통해 화두로 던진 `진보나 민주의 위선`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또한 사람이기에 모든 경우에 올바른 것은 아니다. 스스로 말했듯이 `앞뒤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행동할 수도 있다. `독선`의 문제를 성찰하지 않는 `위선`의 문제가 어떻게 작가정신이 될 수 있겠는가. 김석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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