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현지시각) 미 의회에서 통과된 7160억 달러(약 813조 원) 규모의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 특이한 항목이 포함되었다. 법안의 1264조에 "주한미군 총규모 감축을 위한 예산사용의 제한"이 명기된 것이다. 주한미군을 2만 2000명 이하로 줄이려면 국방장관은 의회에 ① "그러한 감축이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되고, 역내 동맹국들의 안보를 현저히 위협하지 않음"을 입증하고, ② "동맹국(한국, 일본)들과의 적절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일견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협상카드로 쓰지 못하도록 제동을 건 법안은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인 조치를 이끌어 내기 위한 긍정적인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무슨 `금지 또는 제한` 법안은 해당 사안의 심각성을 암시한다. 과문하지만, 군 통수권자에게 미 의회가 동맹국에 주둔하는 군대 규모의 하한선을 법안으로 명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65년간 유지되어 온 한·미동맹은 여러 면에서 특이한 존재다. 서재정은 국제정치학에서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같은 주류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한·미동맹의 특수성에 주목했다(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일례로 한국은 정체성(언어, 문화, 역사)을 공유한 북한을 적으로 삼은 반면, 정체성이 전혀 다른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역사적으로 50년 이상 지속된 군사동맹은 2차대전 이후의 미·일/한·일동맹과 NATO(특히 독일) 정도다. 그 중 한·미동맹은 미국이 패전국(일본, 독일)과 체결하지 않은 유일한 군사동맹이다. 서재정은 1990년대 이후 탈냉전 시대에 들어 오히려 강화되기 시작한 한·미관계를 `동맹의 영구화` 현상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그 표현은 `오버`한 것 같다. 동맹은 필요의 산물이지 필연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속화될 것 같던 한·미동맹, 신성불가침의 상징이던 주한미군의 존재에 3가지 면에서 심상치 않은 위기가 감지된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이 보기에 한국은 동맹국이 아니라 미국이 제공하는 국제안보에 공짜로 편승하려 드는 `무임승차자`에 불과하다. 주한미군은 미국 국익을 증진시키는 자산(assets)이 아니라 부채(liabilities)다. 그래서 당장은 아니지만 하루빨리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막대한 비용을 절감하기를 고대한다.

둘째, 안보·경제의 분리(decoupling) 현상이다. 1997년 우리가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몰렸을 때, 백악관 지하벙커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당시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은 "한국은 수만명의 미군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총을 겨누고 있는 동맹국"이라는 안보논리로 참석자들을 설득했다. 덕분에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아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과의 핵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는 재앙"이라며 한국 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셋째, 종전선언이 초래할 착시현상이다. 사실 주한미군과 종전선언은 관계가 없다. 주한미군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상의 "무력공격"에 대비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반해, `종전`은 단지 "전쟁상태"의 종결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동의 적`을 상정하는 한·미 동맹체제에서, 전쟁종식과 `평화의 일상화`라는 인식은 주한미군의 존재이유에 근본적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미 의회가 통과시킨 주한미군 감축 제한 조항도 실질적 효력보다 상징적 의미가 더 강할 뿐이다. 기껏해야 트럼프의 난폭운전으로 벌어질 대형참사를 막아보려는 `과속방지턱`에 불과하다.

동맹체제도 생물체다. 그래서 탄생-성장-쇠퇴-사멸의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칠순을 바라보는 한·미동맹은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막연히 동맹의 회춘을 기다리기보다, 국가생존을 미국에 의탁해 온 `비정상의 정상화`가 절실하다. 안보의 주인의식(ownership)을 회복하는 것이 그 첫 걸음이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자를 누가 목숨을 걸고 도와줄 것인가. 송승종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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