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필자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마르크 샤갈(Marc Chagal) 전시회를 다녀왔다. 샤갈은 낭만시대와 급변한 20세기의 예술세계의 역사적 흐름과 변천사를 가장 쉽게 한 번에 이해 할 수 있는 작가이다. 그는 90세 이상을 살며 거의 한 세기를 두 번의 세계 대전과 그로 인한 사회, 문화, 경제, 과학 등의 총체적 변화를 직접 경험한 역사적 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대자연이 가장 큰 관심 주제였던 낭만시대에서 입체파와 야수파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무엇보다 한 세기를 살아간 한 사람의 삶 그 자체를 그려낸 일대기라고 하겠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삶의 어느 연대의 작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닭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그가 벨라와 사랑에 빠졌을 때로. 전쟁 중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을 화폭에 담은 동시에 프랑스에서의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갔어야 하는 시기의 작품들임을 예측 할 수 있다. 마을을 제목으로 한 작품들은 그가 고향인 러시아를 그리워하며 외로움과 고독과의 싸움을 견뎌 내려던 시기의 작품일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의 물질주의적 외관에 지배되는 예술을 주시하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모습을 담아내기도 한다. 샤갈의 아버지는 청어상인 밑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는데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생선을 주제로 한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또 바이올린 연주자들을 주제로 한 그림은 그가 음악을 사랑한 자신의 세계를 보여준 귀중한 자산들이다. 문화와 예술은 그 사회와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게 하는 작가이다.

샤갈의 작품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서커스와 곡예사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음악에서 작곡가 리스트도 인간의 한계를 넘는 초절 기교적 능력에 매우 관심이 있었음을 그의 초절기교 연습곡들에서 명백히 보여준다. 이는 마치 훗날 니체의 초인간(Ubermensch)을 예견하듯 곧 다가올 시대의 전주곡(prelude)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쇼팽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인 즉흥환상곡 또한 그가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와의 말다툼이 있을 때 끊임없이 잔소리를 퍼붓는 그녀의 모습을 담고, 중간부분에서 들려주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는 그와의 화해를 암시하는 것 아니었을까.

샤갈과 같이 한 세기를 살았던 화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역사적 사회적 흐름을 이해하며 돌이켜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예술은 한 시대의 거울이기 전에 한 사람의 사회와 역사를 포함한 평범한 삶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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