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전국 국어책임관과 국어문화원 공동연수회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국어 생활과 관련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우리말을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할 때 되도록 순화해 사용하도록 노력하자는 취지의 장이었다. 이른바 `공공언어 개선`을 주제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과도한 외국어나 외래어의 사용 및 올바르지 않은 우리말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시의 한 국어책임관이 공공언어 순화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수상과 함께 그 사례를 발표했다. 발표된 많은 기관의 이름이 그 뜻을 알기 어렵게 명명돼 있었다. 그중에서 청중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던 곳은 `아스피린 센터`라는 곳이었다. 언뜻 유명한 약품을 떠올리게 하는 이곳이 창업 지원 기관이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많은 이들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스피린(Aspirin) 센터는 영문으로 된 이름을 줄여서 만든 것이다. `Advanced Startup Program on Innovative Remedies for Illness of Next Society`가 아스피린 센터라는 곳의 줄이기 이전 이름이다. 즉, `창업으로 인한 고통에 처방을 내려줄 수 있는 기관`이라는 셈이다.

우리말로 표기한 `아스피린 센터`를 내건 것도 아니고 `ASPIRIN CENTER`라는 영문 간판을 건물 곳곳에 걸어둔 것을 보자니 진정 아스피린 한 알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줄임말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점 하나 찍어두지 않은 채….

결국, 아스피린 센터는 지난해 4월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이름을 꾀하였고, 그 결과 `서울창업디딤터`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디딤터`라는 우리말을 사용하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려는 자들에게 필요한 기관`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공공언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공적으로 많은 이들이 알기 쉽게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언어생활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무리한 개선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아스피린 센터`처럼 기관의 정체성을 표현하지 못함은 물론, 도리어 다른 기관으로 오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은 바꿔야 함이 옳다. 그러나 `메시지`를 `교서`, `전갈`로 순화해 사용하도록 권고하는 사전적 내용처럼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공문서에 `메시지`를 쓰기 어렵다면 `전갈`보다는 문맥에 따라 적절한 어휘를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바로 `공공언어 개선 및 순화`의 노력이 아닐까.

지난 3월 13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영어 등 외국어가 법령뿐 아니라 회의 석상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으니, 정부가 우리말 사용에 모범을 보여야 하며, 범정부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공공언어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대책들도 마련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지속해 더욱 현실적인 순화어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원호 한남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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