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세종 컨벤션센터에서 국가보훈처 창설 57주년 기념식이 개최됐다. 국가보훈처는 1961년 8월 5일에 군사보훈청으로 설립됐다가 이후 1962년 장관급 부처인 원호처로 바뀌었으며, 1985년 1월 1일부터는 국가보훈처로 개칭됐다. 1998년 차관급 기관으로 격하되었다가, 2004년 장관급으로 다시 격상됐으며, 2008년 다시 차관급으로 격하됐다. 그리고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2017년 7월 다시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유달리 많은 변화를 겪은 우리나라의 국가보훈처를 보면서 보훈이란 무엇인지, 왜 다른 해외의 국가들은 장관급 기구인 보훈부로 보훈을 강화해 온 것인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부터 보훈의 기능을 하는 상사서(賞賜署)가 있었다. 또 고려시대에는 상서고공(尙書考功)이라는 기관을 통해 건국 공신과 전사자, 심지어 고려를 위해 희생된 외국인들을 예우해주었고, 신흥사라고 하는 절을 지어 보훈자들의 공적을 널리 알리도록 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충훈부(忠勳府)라는 부서를 만들어 국가를 위해 희생되거나 공을 세운 사람들을 우대하고 그들을 위한 사당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으며, 이들의 가족도 우대했다.

한편 해외 국가들을 살펴보더라도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은 보훈 관련 정부기구를 계속 확대 강화하여 왔다. 미국의 경우에는 1989년 제대군인처를 장관급 부처인 제대군인부로 승격시켰으며, 캐나다와 호주 등도 모두 장관급 독립부처인 보훈부를 두고 있다. 정부 기구의 강화 외에도 캐나다는 2006년 보훈 관련 신헌장과 2007년에는 제대군인 권리장전(Bill of Rights) 등을 제정해 보훈의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럼 보훈은 무엇이며 왜 선진국들은 이렇게 보훈 기능을 계속 확대 유지하고 있을까라고 질문하게 된다. 국민이 국가를 사랑하는지를 묻는 개념이 애국이라면, 보훈은 반대로 국가가 국민을 사랑하는지를 묻는 개념이다. 즉 보훈은 국가를 사랑하는 국민을 국가도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국가의 기능이다. 보훈 기능은 국가에 대한 공헌을 잊지 않고 보답하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희생했다면 국가는 당신과 당신의 남은 가족을 찾고 보살피고 책임진다는 약속이다. 따라서 국가의 정체성과 존립, 통합과도 관계되는 핵심적인 국가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국민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정부 기능으로 이 때문에 많은 다른 국가들도 보훈 관련 정부기구를 확대하고 보훈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가마다 고유의 역사에 따라 보훈대상의 범위는 조금씩 다르다. 한국의 보훈 범위는 독립유공자, 보훈대상자와 민주유공자를 모두 대상으로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보훈의 범위도 한국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독립을 맞이하고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이 독립유공자들을 찾고 한국의 독립에 기여한 이들에게 감사와 보상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립 직후 그러한 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장 고마워하고 챙겨야 할 분들과 그들의 가족을 제대로 찾고 보답하지 못했다. 또 이어서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상당기간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기간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도입과 확대를 위한 많은 노력과 희생들이 있었다.

한국은 독립과 함께 우리가 원하는 모습의 국가가 곧바로 된 것은 아니었고, 우리가 원하는 민주국가로의 변화는 설립 이후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는 독립국가이자 또 민주국가를 지향하고 있어 이러한 국가의 독립과 민주주의 가치에 기여하고 우리가 원하는 국가의 설립에 기여한 이들에게 보답을 하고자 보훈의 범위가 독립유공자와 민주유공자를 모두 포함하게 된 것이다.

국가의 본연의 기능인 보훈은 어느 특정한 정부나 이념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이다. 국가유공자가 존경받고 보훈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라가 좋은 국가이다. 곧 8월 15일이다. 국가보훈처의 생일을 축하하며 우리나라를 지켜주고 만들어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황혜신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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