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난 `동네서점 키드`였다. 참고서나 문제집이 아니면 무용의 책으로 간주하는 부모님의 완고한 도서구매 기준(넉넉치 않은 가정경제 상황도 한 요인이었으리라) 탓에 청소년시절 비학습용(?) 책을 사 읽기란 언감생심이었다. 시립도서관은 멀었고 학교도서관은 매력적인 책들이 드물었다. 동네서점이 탈출구였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집 근처 동네서점에 죽치고 앉아 신간 잡지를 섭렵했다. 간혹 어느 잡지는 중학생이 보기에 위험수위였지만 주인 아주머니 기분을 잘 살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통학길의 가장 큰 규모 동네서점에 자주 갔다. 몇 시간 서 있는 수고만 감내하면 일주일에 소설책 몇 권도 너끈했다. 주변에 다른 동네서점도 몇 곳 있어 눈치가 보이면 잠시 다른 서점들을 순회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여유를 누렸다.

추억이 쌓인 동네서점 가운데 지금까지 남은 책방은 한 곳도 없다. 집 근처 동네서점이 가장 먼저 문을 닫았고 도심에 자리했던 동네서점도 사라진 지 10여 년이 넘는다.

일본의 에세이스트 히라마츠 요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 실린 글에서 "도서관은 장대한 우주체계를 연상하게 하지만 서점은 우주이자 동시에 속세다. 사고파는 사람들의 마음과 취향과 욕망이 공명하며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더 나아가 책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갖는 지극히 인간적인 맛"이라고 썼다.

개브리얼 제빈의 소설 `섬에 있는 서점`은 가상의 섬인 앨리스 섬의 하나뿐인 서점 `아릴랜드 서점`이 배경이다. 서점의 주인 부부는 문학박사학위를 준비하다가 문학적 삶을 살아가는 더 나은, 더 행복한 길을 찾아 서점 없는 동네는 동네도 아니라며 앨리스 섬에 서점을 열었다. 소설은 하나의 동네서점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영감을 주고 위안이 되는지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한 대형서점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동안 읽은 책들의 목록이 공개된 뒤 해당 책들의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어떤 경로로 책들을 구했을까? 이왕이면 문 대통령이 휴가를 떠나기 전, 혹은 휴가지의 동네서점에 직접 들러 그 책들을 구입하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네서점의 이야기도 들었으면 어땠을까.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를 `책의 해`로 정했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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