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대덕특구] 폭염에도 15도… 옷깃 여미게 하는 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시설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 내 실제 심층처분시스템을 구현한 실험모듈에서 연구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열을 내뿜는 방사성폐기물를 모사해 금속용기 안에 전기적으로 100도의 열을 내는 장치를 담았다.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 내 실제 심층처분시스템을 구현한 실험모듈에서 연구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열을 내뿜는 방사성폐기물를 모사해 금속용기 안에 전기적으로 100도의 열을 내는 장치를 담았다.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폭염이 좀처럼 수그러 들 줄 모른다. 태양신 헬리오스가 성이 단단히 난 모양이다. 옛 사람들은 태양과 그 주위를 도는 행성들을 신으로 여겼다. 그리스 신화에서 뜨거운 태양은 불의 전차를 끌고 달리는 헬리오스로 수성은 바삐 움직이는 모습 탓에 전령의 신 머큐리로 묘사된다. 새벽녘 황금빛 자태를 뽐내는 금성은 미의 여신 비너스를, 핏빛으로 붉게 물든 화성은 전쟁의 신 마르스를 상징한다. 지구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서 비롯됐다.

불같은 더위가 계속된 지난 2일 한국에서 가장 시원하다는 연구실을 찾아갔다.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이다.

연구원 뒤편 산을 향해 비포장도로를 차로 5분 정도 달리자 굳게 닫힌 철물 위로 연구시설 간판이 보였다.

오전 11시. 한창 태양이 맹위를 떨치며 수온주가 40도를 향해 쭉쭉 올라가는 시간이었지만 연구시설의 문이 열리자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연구모듈까지는 비스듬히 지하로 뻗어 있는 진입터널을 180m나 가야 했지만 입구부터 이미 딴세상이었다. 가이아의 품 속까지는 헬리오스의 따가운 시선이 미치지 못했다.

안내를 해준 지성훈 선임연구원은 "1년 내내 시설 내부 온도는 15-16도 정도"라며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 건 상관 없지만 연구를 하려 장시간 머무를 땐 긴옷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폭 6m, 높이 6m의 말발굽형 터널은 진입로 180m와 연구모듈 75m로 이뤄져 있다. 가장 깊은 곳은 지표 아래 120m 정도 위치한다.

아래로 내려가 보니 연구모듈로 가기 전 물 소리가 들려온다. 따라가 보니 티 하나 없이 맑은 지하수가 흘러간다. 연구 목적으로 주기적으로 수질 검사를 하는데 1급수라 바로 마셔도 될 정도라고 한다.

연구원은 "지하수는 수온이 연중 15도 내외다. 지금은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계절에 관계 없이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기 때문에 식물공장과 같은 수경재배 시설도 지하수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 연구시설은 보통 연구의 정확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데 연구자들이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그러나 이곳은 아예 냉·난방시설이 없다. 대자연이 늘 쾌적하게 온도를 조절해주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연구원을 찾는 이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특히 여름엔 원자력연이 방학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개방의 날` 행사의 단골 견학코스다. 연구원 내를 돌며 더위에 지친 관람객들이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탄성을 지른단다.

이렇게 깊은 곳에 연구시설을 만든 이유는 사용이 끝난 원자력연료의 안전한 처리법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등 높은 방사능을 띠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방사능이 낮은 중저준위 폐기물과는 별도로 안전하게 처분돼야 한다. 현재 정부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최소한 60년 이상은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될 전망이다. 또 사용후핵연료는 최소 10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는 점에서 처리법 연구는 필수적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우주에 처분하거나 깊은 바다에 저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까지 안전성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땅 속 깊이 묻어버리는 심층처분이 가장 현실적이다. 핀란드는 2015년 11월 세계 최초로 심지층 동굴처분장 건설을 승인했고 2023년 운영 예정이다.

지난 2006년 완공된 원자력연 KURT는 비록 선진국의 지하처분연구시설에 비해선 미흡한 수준이지만 2015년 확장공사를 마치고 세계 각국으로부터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다. 지하처분 시스템의 타당성과 안정성 적합성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기초 연구시설로 방사성 물질을 지하에 보관할 때 지하수의 움직임 등 환경의 영향에서 오랜 시간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가 연구 목적인 만큼 실제 방사성 물질은 사용하지 않는다.

지 책임연구원은 "지하처분연구시설은 연구 뿐 아니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에 대해 국민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며 "앞으로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기술 연구에 주력하면서 원자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 확산에도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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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시설 연구모듈에서 연구원들이 실험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시설 연구모듈에서 연구원들이 실험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 입구에서 내려다 본 진입터널. 이용민 기자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 입구에서 내려다 본 진입터널. 이용민 기자
진입터널 끝에서 올려다 본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 입구. 이용민 기자
진입터널 끝에서 올려다 본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 입구. 이용민 기자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KURT) 입구. 사진=이용민 기자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KURT) 입구. 사진=이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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