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비서관실 위상과 역할 강화해야

지역의 개성을 살린 특성화된 방법으로 전국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데 반대할 이가 누가 있으랴. 하지만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걸음마를 뗀 우리 지방자치는 7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2할 자치`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가 도입된 이래 수많은 지역 일꾼들이 일선에서 투쟁해왔고, 역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정치지도자들이 저마다의 장밋빛 청사진을 들고 나왔지만, 왜 아직까지 지역 민심에 부응하지 못하는 걸까. 그 근본적 원인을 찾기 위한 실마리를 이번 청와대 조직개편에서 엿볼 수 있었다.

청와대는 지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치분권비서관실과 균형발전 비서관실을 `자치발전 비서관실`로 통합했다. 청와대내 지역관련 업무를 다루던 두 곳이 기능중복을 이유로 합쳐진 것이다. 상충하는 일이 잦았던 두 기능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였으며, 조직과 기능을 줄이지 않고 종전대로 유지해 문제가 없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지만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자치분권은 권력과 기능을 배분하는 것이고, 균형발전은 자원을 균형 있게 나누는 것으로 상충되는 게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다. 자치분권으로 인해 불균형이 나타날 때 균형발전으로 보완해야 하고, 균형발전이 중앙집권화의 폐해로 나타나지 않으려면 자치분권이 전제돼야 한다. 행정관 수조차 줄이지 않을 정도로 조직 및 규모에 대해선 손을 대지 않겠다는 입장이나, 타 비서관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언제든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더 큰 걱정거리가 남는다.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지방분권 국가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자치와 분권 시대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됐던 지도자다. 대선과정에서는 물론 정부출범 후 여야 지도부를 만난 자리와 국무회의, 전국 시도지사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지방자치의 필요성과 추진의지를 거듭 밝히며, 국민들에게 한결같은 믿음을 심어줬다. 개헌작업에선 지방분권을 주요 키워드로 제시했으며, 야당의 반대로 개헌이 무산된 뒤에도 정부 개헌안 취지를 살려 지방분권을 강화토록 주문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48개의 비서관실 중 2곳에 불과했던 지역 관련 비서관을 통합할 게 아니라, 수석보좌관실로 승격시켜 개헌무산에 따른 후속작업을 철저히 대비토록 했어야 했다.

국민적 신뢰가 훼손되면 지방자치를 위한 동력 자체가 위협받을 우려가 크다. 사실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의 공급자는 중앙정부지만, 수요자인 지방이 주체가 돼야 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의무는 중앙의 몫이고, 권리는 지방에 줘야 한다. 지방자치는 그만큼 진정성이 담보된 국가지도자가 강력히 추진해야만 실현해낼 수 있는 난해한 국정과제이고, 국민적 신뢰회복은 이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국민적 신뢰가 부족하면 지방자치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지방자치에 대해선 역대 정권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진다면, `내 삶을 바꾸는 자치분권`과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균형발전`은 또다시 공염불이 될 수 밖에 없다.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있지만, 위정자들은 선거 때면 늘 지방을 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것은 역대 어느 지도자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과 다름아니다. 물론 문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지방자치에 대해 보여준 관심과 의지는 확실히 남달랐다. 하지만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이번 청와대 조직개편으로 인해 지역민심이 크게 술렁인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통합된 자치발전비서관실의 위상과 역할 강화를 통해 제기능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다. 청와대 내 모든 참모와 내각까지도 문 대통령의 지방분권 행보에 발 맞춰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게 절실하다.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