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적 힘이다."(`백범일지`에서)

김구 선생의 문화에 대한 혜안은 비단 국가의 차원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도시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화의 발전은 시민들이 수준 높은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대부분 문화보다는 경제적 발전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가장 빈도 높게 등장했던 키워드가 경제였다는 사실만으로 알 수 있다.

물론 시장후보자들이 경제적으로 잘 사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역 문화에 대한 생각이 없이 상업자본주의적 경제만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혹여 문화 도시에 대한 목표를 제시하더라도 경제 도시의 하위 개념이나 부수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그런 정도의 생각으로는 주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윤택하게 할 수 없다.

문화는 경제의 부수적 대상이 아니라 경제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창조적 감성이 요구되는 이 시대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보다는 아트웨어(artware)가 중시된다. 이 시대는 정치나 경제도 문화와 상보적 관계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 대세이다. 근대 회화의 본고장 파리, 전위적 현대 예술의 도시 뉴욕, 아름다운 음악의 도시 베를린 등이 그런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 도시가 그러하듯이 매력적인 문화는 한 도시의 경제적 성공과 시민들의 수준 높은 삶을 견인한다.

그러면 대전을 문화 도시로 거듭 나게 할 상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단지 교통 도시나 과학도시라는 이름만으로는 대외적 인지도가 큰 명품 도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전이 명품 문화 도시가 되려면 이 시대에 적실한 대전의 대표적 문화 아이콘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 가령 부산국제영화제가 항구도시로만 고착되었던 부산의 이미지를 바꾸고, 광주비엔날레가 민주화의 장소를 넘어서는 문화 도시로서 광주의 이미지를 제고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대전이 명품 도시가 되려면 우선 문화와 관련된 대표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사실 대전 하면 금세 떠오르는 문화적 이미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전역 이외에는 딱히 내세울 만한 이미지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이미지가 없다는 것은 콘텐츠가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대전이 문화 도시, 명품 도시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대표적인 문화 이미지를 창출해 낼 필요가 있다.

대전은 그동안 양반 도시나 과학 도시를 대표적 이미지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양반 도시 이미지는 시대적 적실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과학 도시 이미지도 문화와는 동떨어진 것이 아닐 수 없다. 대전은 이제 이 시대에 알맞은 문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유학적 전통과 첨단 과학이 발달한 대전에 어울리는 국제 게임 페스티벌이나, 영화 못지않게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국제 드라마 페스티벌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게임이나 드라마는 관련 기업이나 기관이 많은 대전의 현실적 여건이나 시대적 트렌드와도 잘 어울리는 문화콘텐츠이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대전을 도서관의 도시로 만들어 보는 것도 시도해 봄직하다. 대전을 세계적인 수준의 도서관 문화가 살아있는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허태정 시장이 유성구청장 시절 성공적으로 추진했던 마을 도서관 사업을 대전 전역으로 확대하여, 대전을 교양이 넘치는 문화 도시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세계 최초로 국제 도서관 페스티벌을 개최해 보는 것도 신중하게 고려해 볼 일이다. 요컨대 도서관과 함께 앞서 말했던 드라마나 게임 콘텐츠가 대전의 문화 이미지로 온전히 자리를 잡는다면, 대전은 명품 문화 도시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이형권(충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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