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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 산책] 음양과 오행②

2018-08-02기사 편집 2018-08-02 08: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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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고대부터 음양과 오행이라는 두 가지 분류법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1973년 한묘(漢墓)에서 발굴한 <백서주역>에 공자가 '오행보다 음양을 선호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 음양과 오행이라는 분류법이 혼용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행사상은 수·화·목·금·토 다섯 가지를 만물의 원소로 보는 이른바 오원소설이다. 오행이라는 단어는 <서경> 홍범(洪範)편에 처음 등장하는데, 그 후 전국시대에 추연(鄒衍)이란 사람이 상승(相勝)의 원리로 왕조의 흥망을 설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러다가 한(漢)나라 초기에 결집한 백과사전인 <회남자>에 이르러서 비로소 오행에 관한 내용이 정리되기 시작한다. 당시에 나온 최초의 의학서적인 <황제내경>은 오행으로 생리와 병리를 설명하고 있으니, 오행이론이 의학에 등장한다. 중국인은 일찍이 은나라 때에 세월의 흐름을 십간(十干)으로 기록한 것이 갑골문에 남아있다. 그러다가 간지(干支)에다 음양과 오행을 배대하였는데, 십간은 하늘인 양이고 십지는 땅인 음에 해당한다. 10이란 숫자는 열 손가락에서 나왔고, 12는 발톱 12개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있으나, 12는 1년 열 두 달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그럴듯하다. 10과 12의 최소공배수는 60이므로, 간지를 조합하면 60갑자가 형성되는데, 오행사상은 이 60갑자로 세월을 구별하고, 나아가 세상만사의 변화도 오행의 상생상극작용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즉 한나라에서 세상사를 설명하면서, 이분법과 오분법을 애용했다. 음양사상은 삼라만상을 64개로 나누었고, 오행사상은 60개의 유형으로 분류한 셈이다. 그러나 세상일은 이 정도의 '경우의 수'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복잡하므로, 다시 주역은 384효를 사용하였고, 한(漢)나라의 역학자인 초연수(焦延壽)는 그가 지은 <초씨역림>에서 64괘가 각각 64괘로 변화하여 4,096가지로 확장된 내용을 자세하게 점사로 기록하기에 이른다. 오행은 연월일시에 각각 60갑자를 세워서 사주(四柱)를 무려 518,400종류로 세분하였다. 그러자 송나라의 소강절(邵康節)은 <황극경세>에서 주역의 64괘를 가지고 시절을 계산하는 방법을 창안하여, 129,600년을 일원(一元)으로 보았다. 이렇게 음양과 오행이 각각 독자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서로 경쟁관계에 들어서자, 양자를 종합하려는 노력도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의학서적인 <황제내경> 소문(素問)이다. 즉 생기(生氣)는 움직이는 원기니 양으로 보고, 육신(肉身)은 원기에 따라가니 음으로 본다. 동시에 오장육부는 오행에 따라서 분류하여, 간담(肝膽)은 목, 심(心)소장(小腸)은 화, 비위(脾胃)는 토, 폐(肺)대장(大腸)은 금, 신(腎)방광(膀胱)은 수에다 배대하면서, 상호간에 상생상극하는 현상으로 생리와 병리를 설명한다. 약초도 그 맛과 향기를 기준으로 치료에 활용한다. 한말(韓末)에 나온 동무 이제마선생의 사상의학은 이런 음양사상을 독특하게 발전시킨 의학이론이다. 음양에다 오행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역학계에도 있었다. 전한(前漢)시대에 초연수의 제자인 경방(京房)이란 역학자가 음양과 오행을 종합하여 주역 64괘를 상생상극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였다. 즉 음양으로 표시된 육효에다 오행의 간지를 배대하고는, 간지오행의 생극으로 길흉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40년경에 일어난 사건인데,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육효점이 바로 이 경방의 학설을 이용한 음양오행 점법이다. 한편 오행학은 명리학에서 그 꽃을 피웠다. 한(漢)나라에 오운육기라는 명리술이 있었으나, 그것이 제대로 체계를 갖추고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당(唐)나라 때이다. 즉 생년월일시 사주에서 생년을 중심으로 운명을 읽었는데, 태어난 띠가 평생을 좌우하는 기준이 었다. 그러나 송나라에 들어와서 생일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자평법이 유행하면서 당사주(唐四柱)는 서서히 사라졌다. 송대의 자평명리학은 그 후 이론이 더욱 발전하면서, 적중률이 높아졌는데, 우리나라에도 조선 초기에 양반사회에 유입되었다. 그러나 서민사회에는 여전히 유치한 당사주가 성행하였으니, 지금도 당사주라는 단어가 모두에게 익숙하다. 당시 중인(中人)들이 응시하던 음양과의 시험과목도 원천강의 당사주였으니, 발전된 자평법은 최근까지 공개되지 않았었다. 그 반작용인지, 지금은 전국의 평생교육원에서 너도나도 자평학을 가르치고 있는 광경을 볼수 있다.

황정원(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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