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40대 남성을 진료한 적이 있다. 불안하다며 병원을 찾은 남성은 불안의 원인이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내가 전보다 화장이 더 밝아졌고, 전과는 다르게 옷차림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어서 수상하다는 점에서다. 자신의 남동생에게 친절하게 대하는데 남동생과 불륜관계인 것이 분명하다고 했고, 친구 부부와 같이 식사를 할 때 친구를 보고 웃는 웃음을 보니 그 친구와도 불륜관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전형적인 의처증 증상이다. 물론 이 남성은 의처증이라고 하는 병이 있는 사람이고 그 병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며, 치료를 하면 이런 증상은 사라질 수 있다.

병적인 것을 떠나서 이 남성이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은 독특한 생각의 방식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임의적 추론과 선택적 추상화다. 임의적 추론이란 어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필요한데, 몇 가지 정보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어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황 전체에 대한 정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 여섯 가지의 정보는 필요한데 한 가지 정보나 두 가지 정보만을 바탕으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선택적 추상화는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 연관된 많은 정보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거나 자신이 보고 싶은 일부의 정보만을 선택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아내를 의심하는 이 남성도 아내를 의심할 만한 근거가 더 필요한데도 사소한 몇 가지 일로 아내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자기가 아내를 의심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 사실만을 선택해서 생각하면서 아내가 확실히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독자들도 이 남성의 생각이 좀 황당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남성만 이렇게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실 우리 모두는 이런 이상한 방식의 생각을 조금씩이나마 하면서 살고 있다. 친구나 직장동료 또는 상사가 별 뜻 없이 말한 한 마디 말에 다른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날 무시하고 깔보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가진 전체의 모습을 보기 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일부 모습만 보고 매우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어떤 조직이나 어떤 집단을 평가할 때 그 집단이 하는 활동 전체를 보기 보다는 사소한 몇 가지의 활동 또는 어쩌다가 말한 한 마디 말을 보고 그 집단은 이런 집단이라고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이렇게 임의적 추론을 하거나 선택적 추상화를 할 때는 객관적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나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입장에서 편견을 가지고 자기가 보고 싶거나 자기가 원하는 정보만을 보고 판단하게 된다. 때문에 이렇게 임의적 추론이나 선택적 추상화를 하면서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집단을 평가할 때는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경우보다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대방을 부당하게 의심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 앙심을 품기도 하며 어떤 집단을 근거 없이 비난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는 상대방이 되는 사람이나 집단과 심각한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내를 근거 없이 의심하는 남편처럼 자기 자신도 괴롭고 힘들어지게 된다. 이런 갈등 내에서는 누구도 승자가 될 수가 없다.

나의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 한 걸음만 더 물러나서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다른 사람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려고 노력을 할 때,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갈등이 사라지고 내 마음의 평화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을 볼 때도 내가 인정하기 거부했던 모습을 보려고 노력 하고,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쓸데없고 소모적인 갈등에서 벗어나서 합리적인 경쟁을 할 수 있으며, 서로 화합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창화 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