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누구는 더위를 피해 계곡으로 바다로 떠난다지만 또 누군가는 이 불볕더위에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난다. 몇 십 년만의 기상이변이고 폭염이라고 어디 봐주는 법이 있는가. 지난 주말에 오랜 투병 끝에 사촌누나가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에는 널리 대중의 사랑을 받던 어느 정치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또 한국 문학에 큰 자취를 남긴 작가가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필부라고 어김이 있고 명인이라고 피해가는 일이 없다. 그게 우리네 삶이다.

폭염 속에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당과 고택이 있는 충남 청양군의 모덕사를 찾아갔다. 고절한 선비의 넋인 듯 붉은 배롱나무가 고택의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 이후에 의병을 일으켰다가 관군에게 잡혀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곡기를 끊고 물도 안 마시다가 병을 얻어 생을 마친다. 대의(大義)를 위해 삶을 버렸으니 일찍이 인의(仁義)를 내세워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죽었다는 백이숙제와 그 결이 다르지 않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백이숙제와 같은 이들이 비참하게 죽고 온갖 만행을 저지른 도척 같은 이가 천수를 누리고 후손까지 잘 사는 현실에 분개한다. 과연 하늘의 뜻이 옳은 건지 의심스럽다고까지 말한다. 공자는 백이숙제의 죽음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그만이다`라고 답한다. 올바름을 추구한 보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보상이며 현실의 이익을 얻을 수는 없더라도 올바름을 추구했다는 스스로의 당당함과 후대의 평가가 위안이 되지 않겠냐는 뜻이다.

사회정의를 추구하다가 오히려 궁벽한 처지에 내몰려 정치자금법을 어기게 된 그 정치인은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한다"며 스스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다. 그 또한 삶을 버리고 죽음으로써 이름(名)을 지키려했던 이들과 뜻을 같이했다. 평생을 약자들의 편에 섰던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는 국민들이 과연 그의 바람대로 그의 평생의 정치적 동지들을 미래의 대안으로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김석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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