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에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당과 고택이 있는 충남 청양군의 모덕사를 찾아갔다. 고절한 선비의 넋인 듯 붉은 배롱나무가 고택의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 이후에 의병을 일으켰다가 관군에게 잡혀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곡기를 끊고 물도 안 마시다가 병을 얻어 생을 마친다. 대의(大義)를 위해 삶을 버렸으니 일찍이 인의(仁義)를 내세워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죽었다는 백이숙제와 그 결이 다르지 않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백이숙제와 같은 이들이 비참하게 죽고 온갖 만행을 저지른 도척 같은 이가 천수를 누리고 후손까지 잘 사는 현실에 분개한다. 과연 하늘의 뜻이 옳은 건지 의심스럽다고까지 말한다. 공자는 백이숙제의 죽음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그만이다`라고 답한다. 올바름을 추구한 보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보상이며 현실의 이익을 얻을 수는 없더라도 올바름을 추구했다는 스스로의 당당함과 후대의 평가가 위안이 되지 않겠냐는 뜻이다.
사회정의를 추구하다가 오히려 궁벽한 처지에 내몰려 정치자금법을 어기게 된 그 정치인은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한다"며 스스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다. 그 또한 삶을 버리고 죽음으로써 이름(名)을 지키려했던 이들과 뜻을 같이했다. 평생을 약자들의 편에 섰던 그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는 국민들이 과연 그의 바람대로 그의 평생의 정치적 동지들을 미래의 대안으로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김석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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