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 폐막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는 밤새 세 편의 공포영화를 상영하는 심야 프로그램이 있다. 어느 해에는 무섭고 재미있지만, 사실 중간에 집에 가고 싶을 때도 많다. 그래도 매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행사에 참여한다. 공포영화를 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한다. 가끔은 동시에 잠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이 무척 좋지만 꼭 그런 이유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다. 실은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이 행사가 진행되는 곳은 부천시청의 대강당이다. 아마도 시장님이 취임식을 하거나 무슨 공식 행사를 여는 곳일 것이다. 평소 일반인은 가볼 기회가 없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관공서의 근엄한 공간에서 영화를 보느라 두 발을 뻗고 있으면, 몰래 학교 교무실에 들어가서 딴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평상시 그곳은 아마 엄숙하고 딱딱한 공간일 것이다. 원래 시청이란 그런 곳이겠지. 하지만 부천의 경우, 일 년에 열흘 정도는 불온하고 삐딱하게 바뀐다. 이렇게 공간이 탈바꿈하면 그 안의 공기도 변하기 마련이다. 나는 일부러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휘파람을 불거나 큰 소리도 낸다. 유행가를 부르며 율동을 하기도 한다. 원래 공포영화는 엄격한 보수주의 시대에 해방구처럼 즐겼던 장르다. 그래서 관공서에서 공포영화를 상영한다는 건 아이러니하고 신나는 일이다.

솔직히 대전에서도 이런 영화제가 열렸으면 좋겠다. 평소에는 엄숙했던 장소를 개방하여 즐거운 놀이터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점잔만 빼고 있을 것인가? 분위기를 재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벌써 22회나 되었다. 우리는 22년이나 유희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비단 영화제가 아니어도 대전에서 어떤 축제가 개최된다면, 평소 들어갈 수 없었던 근엄한 장소에서 열렸으면 좋겠다. 진지하고 엄숙하다는 건,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말과 비슷하다. 어떤 관공서의 공기는 수십 년째 그대로 일 것이다. 이럴 순 없다. 환기가 필요하다. 한 곳씩 찾아가 왁자지껄 웃음으로 해방시켜 줍시다. 오세섭 독립영화감독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