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도 1년 지난 모델은 구닥다리가 되어 가는 사회에서 고인이 된 지 몇 백 년이 지난 작곡가들의 작품들로 보내는 연습과 고뇌의 시간은 무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기에, 배움과 습득의 기간이 길지 않아도 끼와 가능성과 약간의 천운으로 하루아침 대박날 수 있는 아이돌과 연예인을 꿈꾸는 연습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갖고 감상하며 감동하지 않는 예술과 음악을 혼자 고집하는 것은, 마치 낭만시대 구닥다리가 된 소나타 형식을 홀로 고집하며 작곡했던 슈베르트처럼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굶어죽기 딱 좋은 속 터지는 일인 것일까. 반대로,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혼자 굳은 소신과 중심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외골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예술정신인가. 필자도 조금은 혼동이 될 때가 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싶다. 미국이나 중국도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생활은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해졌지만 매말라 가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다시 촉촉한 단비가 되어 줄 예술과 인문학의 필요성이 절실 해진 것처럼, 우리도 로봇이 만들어 주는 음식보다는 할머니의 손맛, 엄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의 맛을 다시 찾게 될 것을 확신한다. 한 때 그 정확한 테크닉과 엄청난 빠르기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쇼팽 에튀드가 더 이상 빠르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속도로만 승부를 거는 오늘날, 깊이 있는 소리의 세계를 느끼고 음미하는 음악적 가치가 평가받는 때가 다시 오기를...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혹독한 연습과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다시 수용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 빠른 것이 최선이 아닌, 자동차가 없던 시절의 "빠르기"의 템포로 베토벤의 "Waldstein" 소나타를 즐기거나 뮤지컬의 흥행에 힘들게 살아남아야 하는 오페라도 다시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꿈꿔본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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