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뉴스에서 미국 보스톤의 `Spyce`라는 레스토랑을 소개하는데. 이곳은 4명의 MIT졸업생이 조리의 모든 과정을 직접 발명한 로봇들이 조리를 하는 곳이다. 음식의 주문도 무인주문기인 키오스크(Kiosk)를 사용하고 조리된 음식에 필요한 고명을 얹는 것에만 인력이 동원된다. 이처럼 최첨단 기술인 인공지능 AI와 로봇이 과학 의학은 물론 우리의 의식주 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현실 속에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동안 갈고 닦아야 하는 스포츠나 클래식 음악 등은 그야말로 구닥다리 가 되어가는 듯하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꿈을 품고, 뛰어놀고 싶은 어린 시절을 반납 하면서 피아노 앞에 앉아 24시간 365일을 씨름하는 비장한 각오의 소유자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핸드폰도 1년 지난 모델은 구닥다리가 되어 가는 사회에서 고인이 된 지 몇 백 년이 지난 작곡가들의 작품들로 보내는 연습과 고뇌의 시간은 무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기에, 배움과 습득의 기간이 길지 않아도 끼와 가능성과 약간의 천운으로 하루아침 대박날 수 있는 아이돌과 연예인을 꿈꾸는 연습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갖고 감상하며 감동하지 않는 예술과 음악을 혼자 고집하는 것은, 마치 낭만시대 구닥다리가 된 소나타 형식을 홀로 고집하며 작곡했던 슈베르트처럼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굶어죽기 딱 좋은 속 터지는 일인 것일까. 반대로,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혼자 굳은 소신과 중심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외골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예술정신인가. 필자도 조금은 혼동이 될 때가 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싶다. 미국이나 중국도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생활은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해졌지만 매말라 가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다시 촉촉한 단비가 되어 줄 예술과 인문학의 필요성이 절실 해진 것처럼, 우리도 로봇이 만들어 주는 음식보다는 할머니의 손맛, 엄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의 맛을 다시 찾게 될 것을 확신한다. 한 때 그 정확한 테크닉과 엄청난 빠르기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쇼팽 에튀드가 더 이상 빠르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속도로만 승부를 거는 오늘날, 깊이 있는 소리의 세계를 느끼고 음미하는 음악적 가치가 평가받는 때가 다시 오기를...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혹독한 연습과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다시 수용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 빠른 것이 최선이 아닌, 자동차가 없던 시절의 "빠르기"의 템포로 베토벤의 "Waldstein" 소나타를 즐기거나 뮤지컬의 흥행에 힘들게 살아남아야 하는 오페라도 다시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마음과 시간의 여유를 꿈꿔본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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