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안보다 내부 혁신에 무게 둬야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이 엊그제 비대위 인선을 완료하고 본격 행보에 나섰다. 빈사지경의 한국당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 그의 책무다. 지금 위기의 한국당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는 비대위원장으로서 한국당의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는 일이 가장 먼저라고 천명했다. 그 일에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과는 같이 갈 수 없다고도 했다. 결연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인지라 김병준 비대위가 어떤 가치와 이념을 정립할지 관심이 쏠린다.

김 비대위원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노무현 정부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재직했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이었으니 이 두 사람은 동지이자 `친노 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김 위원장이건만 취임 직후부터 연일 문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다. 물론 이는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차별화를 통해 보수세력 결집을 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지난 20대 총선 이후 보수층은 줄줄이 이탈했고 급기야 올 지방선거에선 한국당의 안방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길을 잃은 보수층에게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에서 문 대통령을 겨냥한 전선을 형성하고 확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한국당의 존재감이 미약한 상황인지라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의 행보는 다분히 전략적이지만 타깃이 문재인 정부 비판으로 기울면 한국당 혁신을 길을 잃을 맹점도 있다. 최근 활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경제상황 등에 대한 야당의 견제와 직설은 당연한 것이지만 당장 김 위원장이 손을 댈 문제는 아니다. 그는 현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나락에 한국당의 병폐를 뜯어고치려고 긴급 등판한 구원투수이다. 각을 세울 대상은 문재인 정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국당 자체에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김 위원장이 당 혁신보다 정쟁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논쟁을 즐겨하는 학자이자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력, 각종 사회활동 등을 통해 드러났듯이 즐겨 논쟁을 벌여온 그가 청와대와 역학관계는 물론 국회 운영 등에 이르기까지 입을 닫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당 혁신의 전권을 부여받은 만큼 오히려 현실정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한국당 혁신은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당의 현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다.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 취임 일성으로 한국당의 새로운 가치 정립과 계파 진영논리 타파를 강조했다.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어온 계파와 진영 논리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소산으로 읽힌다. 한국당이 친이·친박으로 나뉘어 진흙탕 싸움으로 일관하면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을 초래했고 종국적으로 보수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 그의 진단인 것 같다. 하지만 친박과 탈당파는 잠시 숨을 죽이고 있을 뿐 온존하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의 성공 여부는 우리 정치의 건강성과 직결된다.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룰 때 정치의 쏠림현상을 막을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요소다. 김병준 비대위가 혁신에 성공하려면 지난해 초 `인명진 비대위`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당시 인명진 비대위는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결국 당내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인적쇄신을 도모했으나 친박계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던 전례가 있다. 김병준 비대위 역시 친박계가 최대 주주라는 점은 가장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김병준 비대위의 지향점이 무엇이든 간에 인적청산이 없는 혁신은 불가능하다. 그도 이를 잘 알고 있을 터이지만 선거철도 아닌 지금 인위적으로 손대기가 어렵다는 점은 고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명분과 수단을 통해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걸러낼지 그의 역량이 주목되는 이유다.

김시헌 천안아산취재본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시헌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