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40.3도.

지난 24일 경북 영천과 경기 여주의 낮 최고기온이다. 자동기상관측장비로 측정한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역대 공식 최고기록인 40도를 넘어섰다.

살인적인 7월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찾아오기도 일찍 왔지만 위세가 이만저만 아니다. 낮에는 숨이 턱턱 막히고 한밤중에도 에어컨 없이는 잠을 못잘 정도다. 낮 기온이 사람체온보다 높다고 해도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기록경쟁이라도 하듯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낮 최고기온 40도 공식기록도 조만간 깨질 것만 같다. 태풍이나 비라도 온다면 더위를 몰고 갈 수도 있지만 당분간 소식도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폭염은 통상적으로 7월 말이나 8월 초 찾아온다. 7월 중순부터 시작된 건 이례적이다. 최근 30년간 7월 평균 폭염 일수(33도 이상인 날)는 3.9일이라고 한다. 올핸 장마가 일찍 끝나서인지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폭염이 보름 넘게 지속됐는데도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악의 폭염을 기록했던 1994년 7월의 폭염 일수 18.3일을 뛰어넘을 기세다. 기상청은 이 같은 폭염이 티베트 고원에서 더워진 고기압의 확장과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 상하층을 모두 더운 공기가 뒤덮고 있다는 것이다. 밤이 되어도 기온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고 있다.

올 여름 가마솥 폭염은 우리만 겪는 게 아니다. 이웃 일본은 물론 지구촌 대부분이 펄펄 끓고 있다. 세계의 기온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기후지도`를 보면 한눈에 알 수가 있다. 동북아 일대를 포함해 적도를 중심으로 지구가 온통 빨간색이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이상고온을 보이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은 낮 최고기온이 41.1도까지 올라 기록을 갈아치웠고 미국 캘리포니아는 한 낮 기온이 52도까지 치솟았다. 북아프리카 알제리도 51도까지, 북극권인 노르웨이, 핀란드도 한낮 기온이 33도를 넘어섰다고 한다. 기록적인 폭염이 지구촌을 뒤덮고 있는 셈이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200만 마리 넘는 가축이 폐사하고 양식장 물고기도 떼죽음을 했다. 채소 등 농작물도 물러터지거나 말라죽는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폭염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5월 20일 이후 국내 온열질환자는 1303명이나 발생했고 이중 14명이 숨졌다. 사망자 대부분은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15일 이후 발생했다. 아직 8월 무더위가 남아있는데 예년보다 많은 인명피해를 기록하고 있어 걱정이다.

태풍이나 홍수보다도 더 많은 인명피해를 불러오는 게 폭염이다. 2003년 서유럽을 덮친 기록적인 폭염으로 약 3만 5000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만 1만 4000여 명이 숨졌다. 홍수, 지진 등 그 어떤 자연재난도 이렇게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94년 7월 폭염으로 탈진, 열사병 등으로 숨진 사람이 33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인명피해만 놓고 보면 폭염은 가장 무서운 자연재난이자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실상이 이런데도 우리나라에서 폭염은 아직 재난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도 폭염 대응에 적극 나서기로 한 모양이다. 대통령이 대책마련을 지시했고 행정안전부도 자연재난 지정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나섰다니 다행이다. 재난으로 지정되면 폭염 예방과 피해보상 등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진다. 문제는 국회입법이 이뤄져야 하는데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자칫하다간 삼복더위를 넘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폭염을 재난에 포함시키기로 한 만큼 당국에선 선제적으로 관련 조치를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법제화보다 국민의 생명이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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