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서유미 지음)=불안정한 현실에 말미암은 소시민들의 문제를 특유의 발랄함으로 다뤄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이르러 스스로 "여기 실린 소설과 함께 인생의 다른 구간으로 넘어왔다"고 말하며 문학적 시야를 한결 넓혀 다양한 세대의 고민을 담아낸다. 20대 청년부터 60대의 노인까지 수록작 6편의 주인공들은 `나름대로 생활 속 질곡을 타개하기 위해 열심이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이다. 그들이 직면한 현실은 결혼과 이혼 그리고 출산, 양육과 교육, 실업과 가계부채 그리고 노후 문제까지 세대를 가로지르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와 불안을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경쾌한 필체로 평범한 인간 군상을 따뜻하게 보듬고, 시대의 질병을 예민하게 포착해온 작가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위기와 불안의 단면을 일상의 차원에서 세밀하게 해부한다. 특히 다양한 세대의 고민으로 시선을 확장하여 마치 하나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은 듯한 이번 소설집에서는, 어느 한 세대, 한 사람에게도 소홀함 없이 건네는 애정 어린 안부가 느껴진다. 창비·196쪽·1만 3000원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캐런 M. 맥매너스 지음·이영아 옮김)=이 책은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그 용의자로 지목된 네 주인공들의 비밀,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십 대들의 고민과 사랑, 갈등을 신인 작가라고는 믿기지 않는 뛰어난 필력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어느 평범한 오후, 다섯 학생이 벌을 받기 위해 방과 후 교실에 남는다. 예일대 진학을 꿈꾸는 우등생 브론윈, 메이저리거를 목표로 한 투수 쿠퍼, 교내 무도회에서 공주로 뽑힌 애디, 마약 판매 전과가 있는 문제아 네이트, 그리고 악명 높은 학내 가십 앱을 만든 사이먼.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이 다섯 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소지했던 것이 발각돼 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잠시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늘 다른 사람의 비밀을 폭로해 전교생에게 미움을 받는 사이먼이 물을 마시다가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처음에는 모두 단순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뒤 자신이 컵에 땅콩기름을 넣어 사이먼을 죽였다는 의문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며 네 학생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들에겐 저마다 밝혀질 경우 치명적일 수 있는 비밀이 있었고,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그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현암사·440쪽·1만 5000원

◇울지도 못했다(김중식 지음)= 저자는 이 세계를 지옥이라고 진단했지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사랑을 노래했기에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이 책은 저자의 이전 시 세계가 집중한 암담한 현실 인식 위에 그간의 다양한 생활 경험에서 비롯한 낙관성이 더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은 이 세상, 곧 지옥의 세계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 천국이 저 멀리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충만해 있다면, 바로 지금 이곳이 천국과 같음을 노래한다. 머물러도 떠돌아도 사랑이 있다면 바로 그 머물고 있는 그곳이 천국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첫 시집이 고난받는 삶의 형식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인간의 위엄을 기록하는 영혼의 형식이다"라고 밝혔다.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의식을 담았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한 그가 세상 밖으로 나가 땅에 발붙이고 치열하게 써낸 새로운 시 세계가 펼쳐진다. 문학과지성사·154쪽·8000원

◇잘돼가? 무엇이든(이경미 지음)=이 책은 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를 통해 그녀만의 특별한 작품 세계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감독 이경미의 첫 번째 에세이이다. 인생이란 결코 아름답게 굴러가지 않지만, 그녀의 엉뚱하고 솔직한 이야기에 울고 웃다 보면, 결국 그 힘겨운 과정에서 아름다움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격하게 공감하게 될 것이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가족`과 `영화` `사랑` 등 이경미 감독의 일부가 되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과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고찰, 주변의 상황과 사회적 현상 앞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등 이경미 감독의 외면과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늘 기록하는 습성을 가진 작가의 특성을 보여주는 지난 15년의 일기들이 혼잣말인 듯 수다인 듯 글 사이사이에 들어가 눈물과 웃음을 자아낸다. 못나기도 하고 쿨하지도 않고 윤리적으로 옳은 것 같지도 않은 웃픈 일상들이 독자를 가볍게 들어올린다. 아르테·256쪽·1만 4000원

◇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여성의 삶(장병인 지음)=30여 년간 한국 여성사 연구에 전념한 장병인 교수가 밝히는 조선시대 혼인, 이혼, 간통, 성폭행의 실상. 우리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조선 사회는 유교 때문에 망했다`, `유교는 남존여비 사상의 근원이었다`, `조선 사회의 여성차별은 유례없이 극심했다`는 등 근거가 불분명한 인식들이 만연해 있었다. 이러한 통념이 형성된 배경에는 전통사회의 특성을 무시한 서구중심주의적 사고와 아직도 불식되지 않은 식민사관이 자리 잡고 있는데,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장병인 교수는 여성에 대한 강한 규제는 성리학이라는 특정 사상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는 사회구조적 요인, 특히 지배층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것이라 보고, 조선시대 혼인.이혼.간통.성폭행을 둘러싼 법과 풍속을 세세하게 살펴 그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다. 나아가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현재 한국 여성의 삶과 연결해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휴머니스트·400쪽·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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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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