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이번 칼럼에서는 예수님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묵상하며 그분을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나누어 보고자 한다.

마태 2,1~12는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장면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예수님께서 유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이유는 이렇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구약의 여러 시대에 여러 예언자들이 예언을 하였고, 온 이스라엘 백성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그저 그런 마을에서 탄생한 이유는 하느님의 뜻과 말씀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과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이사 55,1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베들레헴과 같은 비천한 것을 통해 크신 구원 업적들을 이루어나가신다.(2코린 12,9)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두 개의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헤로데 임금에게 묻는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이 질문은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장모와 부인, 그리고 맏아들까지 죽인 그를 자극시켰다. 복음을 보면 헤로데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그는 먼저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고, 권모술수를 사용해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라고 말한다. 헤로데는 자신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크게 노하여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16) 헤로데는 하느님의 뜻과 역사를 거스르는 자기중심적이며, 자기만족적인 인간의 전형이다.

헤로데라는 이름이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셨을 때이다.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이방신 `판`의 신전이 있었던 곳으로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필립피가 자신과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 지방은 우상 숭배와 세상적인 힘과 권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 16,13) 베드로 사도가 말한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절) 이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신다. 성경에 보면 세 번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고가 나오지만 원문을 보면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제자들에게 이것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음을 알 수 있다. 참된 임금은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어 십자가 위에서 처참히 죽임을 당했다가 부활하신 그분이시라는 것이다. 동방에서 본 별이 동방박사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고,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예물을 드린다. 예수님의 탄생을 표현하는 말 중에 하나가 `케노시스`이다.(1코린 1,17; 로마 4,14) `케노시스`의 동사 형태 `케노오`라는 말은 `비우다`는 뜻과 함께 `파괴하다, 헛되게 하다, 의미가 없어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목수인 아버지 요셉 아래서, 마구간의 구유 위에 태어나셨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의 가정 아래서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태어나셨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파괴하고, 헛되게 하고, 의미가 없어지게`하셨다. 동박 박사가 예수님께 드린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다. 여기서 황금은 예수님께서 임금이심을, 유향은 대사제이심을, 몰약은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황금, 유향, 몰약이 인류의 구원자께 드리는 같은 예물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황금, 유향, 몰약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예물이다.

동방 박사들은 더 없이 기쁜 마음으로 힘이 없고, 나약할 뿐 아니라 절대적으로 의존적인 작은 아기에게 경배한다. 그리고 그 아기 앞에서 당시 사람들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였던 별 조차 의미를 잃어버린다. 하느님의 역사와 활동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헤로데는 이 아기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것은 헤로데에게만 해당하는 사건이 아니다. 예수님을 `주님, 스승님`이라고 불렀던 군중이 같은 입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쳤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마태 27,22) 오창호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