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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이야기] 적고 섬세하게

2018-07-19기사 편집 2018-07-19 09: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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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간결한 몇 마디 말이 긴 문장보다 가슴에 와닿는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흔히 '근대'라 불리는 이 시대는 과학과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이 전통의 가치관을 뒤흔들고 있던 때였다. 전기, 자동차, 기차 등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각종 발명품이 등장해 인간의 생활양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보금자리인 건축도 그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규범화된 양식에 따랐던 전통건축은 이제 철과 유리로 대표되는 새로운 재료로 구조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현대건축으로 진화한다. 전통건축에서 당연시 되던 장식은 배제된다. 심지어 '장식은 죄악'이라는 선동적인 말까지 등장한다. 이에 현대건축가들에게는 철과 유리 등 새로운 재료의 특성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진다. 20세기 현대건축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미국 건축가 미즈 반데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는 이 두 가지 현대건축의 핵심을 간결한 말로 제시했다. "Less is more." 그리고 "God is in the detail." 미즈가 전환기의 현대건축가란 맥락에서 이 두 말은 '번잡한 것보다 간결한 것이 더 좋다' 그리고 '세부적인 것까지 좋아야 훌륭한 건축이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미즈가 제시한 현대건축의 이 두 가지 금언을 문화재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문화재는 가능하면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둔다. 옛 장인의 솜씨를 보여주는 세부적인 모양과 세월의 흔적을 유지한다. 이렇게!

문화재를 생각할 때 '보존'이라는 말이 항상 떠오르는 것은 문화재가 가지는 물리적 화학적 취약성 때문이다. 문화재는 오래되어 존재 그 자체를 걱정해야 할 만큼 퇴락한 경우가 많다.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평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만 더 이상 일상적인 관리만으로 불충분한 경우 계속적인 '생존'을 위해 '수리'라는 수술적인 조치를 취한다. 이때 문화재가 탄생한 후 변화와 진화의 과정을 거친 역사적인 맥락 속의 모습을 이해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문화재는 탄생한 당시의 시대적 산물이다. 그러나 문화재를 수리하는 현재는 전혀 다른 시대적 상황이기에 당시의 모습으로 문화재를 수리하는 것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현대는 예전에 비하면 없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할 만큼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만 문화재에 관해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전 재료를 못 구하는 것이 다반사고 옛 장인의 솜씨는 사라져 버렸다. 물론 나무와 흙, 돌 등 천연재료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지만 기와, 종이, 안료와 접착제 등 이것을 가공한 이차재료는 예전 같지 않다. 그저 비슷할 뿐이다. 아니! 눈썰미 있는 사람에게는 비슷하지도 않다. 예전보다 기술적으로 진보된 오늘날 이들 재료를 못 만드는 것이 의아하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 발로 밟고 손으로 이겨 만든 옛 기와와 자동화된 설비를 갖춘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현대 기와가 같을 수 없다. 기와의 물성은 물론이고 색상과 질감도 다르다. 자세히 보면 모양조차 다르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면 결과물도 다른 법이다. 단청 접착제로 쓰이는 아교는 소가죽을 꼬아 만드는데 비싸고 사용하기 번거로워 더 이상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

수리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멀쩡한 부분을 뜯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수술 시 의사가 환자의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멀쩡한 부분까지 메스를 대는 경우와 같다. 이때 문화재는 손상되기 십상이므로 수리의 득실을 계산하고 필요한 경우라도 수리범위를 최소화 한다. 또한 문화재는 옛 장인의 솜씨와 시간이라는 자연의 합작품이니까 수리 시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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