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합니다. 바쁘신 중에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보금자리에 초대하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합니다. 부디 참석 …"
집들이에 초대한다는 후배의 메시지였다. 이어 초대받은 이들은 `집들이 갈 때 선물은 무엇으로 할지`, `집들이 시간은 언제인지` 모두 `집들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 일상에서 `집들이`라는 말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집알이`라는 말을 마주하기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이 둘은 엄연히 주체가 다르므로 구분하여 사용해야 할 말이다. 이 둘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집들이는 `이사한 뒤에 가족이나 이웃을 불러 집을 구경시키고 대접하는 일`을 일컬으며, 집알이는 `새로 집을 지었거나 이사한 집에 인사로 찾아보는 일`이라는 의미로 쓴다. 즉, 우리는 집들이에 초대받아 집알이를 하러 가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일반적인 대화에서 집들이와 집알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였다고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 글 머리에 쓴 `메시지`라고 하는 말도 그렇다. 이 말을 `교서`, `성명서`, `전갈`로 순화하여 사용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굳이 그래야 하는가 싶다. 교서와 전갈이라니. 더욱 낯설지 않은가. 이렇듯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을 두고 소통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은 의사가 서로 전달되고 확인이 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우리말을 가꾸기 위한 노력으로 바라보면 달리 생각할 수 있다. 집알이처럼 버젓이 살아 있는 우리말을 알고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가 사장시키는 꼴인 셈이다. 또한 메시지를 되도록 우리 한자어로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것은 억지스럽기보다는 우리말 가꾸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분별한 줄임말이나 비속어의 사용만이 우리말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알고도 외면하는 태도가 우리말 가꾸기 환경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다.
우리말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라지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국립국어원의 방언 조사에 참여하여 점차 사라지는 우리말에 대하여 깊게 고민한 적이 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조사하고 연구해서 책을 내면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인가. 이는 자료가 필요한 소수에게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둘 수 있도록 더욱 다양한 터가 마련되어야 하고, 또한 많이 알려져야 할 것이다. 이 글을 포함한 우리말 관련 글들이 그 작은 노력의 한 부분인 셈이다.
필자 역시 우리말 표현에서 익숙하지 않은 말과 글을 사용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고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즉, 보고 들은 적이 있다면 때때로 알맞은 상황에서 사용해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말은 전문가들이 지키고 가꾸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을 사용하는 모두가 주체인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래 주었으면 한다. 오늘 이 말글터에 집알이 하러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박원호 한남대 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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