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농업의 특성상 가뭄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큰 재앙이었다. 따라서 기우제는 조정으로부터 자연마을에 이르기까지 나라 전체가 지내는 가장 큰 행사였다.

삼국시대에는 명산대천이나 시조묘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고려시대에는 불교식 법회인 태일이나 도교식의 초제, 그리고 무당을 모아서 지내는 취무도우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우를 빌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식 기우제를 중심으로 각종 주술적 방법까지 동원된 기우풍습이 있었다. 가뭄이 들면 임금을 비롯한 조정대신들이 모두 근신했는데, 이는 임금이 천명을 잘못 받들고 정사를 부덕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간에서는 일반적 동제의 절차에 따라 기우제를 지낸 다음 여러 가지 주술적 방법이 동원됐다. 먼저 정초의 줄다리기는 줄을 용으로 인식하는 쌍룡상쟁의 상징으로서 기우를 비는 풍습이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특히 산상분화가 성했는데, 양(陽)인 불을 지핌으로써 음인 비가 내리기를 기대하는 풍습이었다. 이는 밤에 대개 여러 마을이 함께 지냈기 때문에 대단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우풍습은 현재 관개수리의 발달과 더불어 거의 소멸됐다.

기우제를 지낸 이유는 가뭄 시 비가 오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져 흉흉해진 민심을 하늘에 돌리는 정치적인 계산도 깔려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6월 16일 당진으로 라돈 매트리스를 반입한지 정확히 한 달만에 당진시청에서 `매트리스 보관 및 분리 작업 시 방사선 영향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는 언론브리핑을 실시했다.

원안위는 반입과정에서 주민협의가 없었던 것을 송구하다고 밝히면서 처리마감 시한인 20일 이후에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했다.

그저 주민들이 우려하는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면서 최대한 신속하게 당진항에 있는 매트리스를 처리하도록 양해해 달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한 달여의 시간동안 당진시민과 천안시민의 눈치만 보고 협조를 바랄뿐 한 것이 없다.

인공강우까지 개발된 시대에 지역민의 이해와 허락만을 바라는 국가기관의 언론브리핑은 기우제를 지냈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가 싶다.

차진영 지방부 당진주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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