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칼럼] 생명력과 정기(正氣)

높은 산도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면 평지가 되고 펄펄 끓는 태양의 불길도 50억 년 후에는 모두 꺼진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는 형체를 가지거나 뭉쳐져 있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흩어진다는 법칙이 있는데 이를 물리학에서는 `엔트로피증가의 법칙`, 또는 `무질서도 증가의 법칙`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질서가 없어져 주위와 동일하게 흩어진다는 이 법칙은 인류가 지금까지 관찰해온 우주의 가장 큰 특징이며 만물은 결국 소멸된다는 종교적 깨달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에는 예외가 된다. 오랜 비바람에 점점 작아지다가 모래가 되는 바위와는 달리, 생명은 살아있는 동안 형체를 유지하고 자손을 남겨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한다. 예컨대 돼지고기는 상온에서 일주일만 지나도 상하지만 살아있는 돼지는 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돼지고기와 살아있는 돼지 사이에 달라진 것은 생명밖에 없지만 돼지고기는 물리법칙을 따르고 살아있는 돼지는 물리법칙을 거스른다.

건강하다는 것은 생명력이 강해 `질서`를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며, 질병이 있는 것은 반대로 생명력이 약해 `질서가 깨져` 형체가 손상되려는 것과 같다. 만일 감기에 걸렸거나 뼈가 부러졌거나 수술하는 등 몸에서 질서가 일시적으로 깨어졌을 때 건강한 생명력이라면 곧바로 회복이 된다. 아무리 심한 감기라도 일주일이면 호전의 징후가 보이고 부러진 뼈와 상처는 보름 이내에 무조건 아물어야 한다. 만일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나 잘 낫지 않는다면 생명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자신의 몸에 발생한 `깨진 질서`를 신속하게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내 몸의 질서를 유지하고 무질서를 빠르게 교정하는 능력을 `원기(元氣)`, `정기(正氣)`, `양기(陽氣)`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데, 질병을 치료하기에 앞서 생명력의 성쇠를 판단하는 것을 의사의 가장 중요한 책무로 여겼다. 아무리 질병을 잘 치료하는 의사라도 환자의 생명력을 판단하지 않고 질병을 신속하게 없앨 수 있는 강력한 처방만을 투여한다면 치료는커녕 오히려 약물로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는 서툰 의사인 것이다.

감기로 예를 들면, 체력이 떨어져서 감기가 잘 낫지 않거나 반복적으로 감기에 걸리는 사람에게는 감기 치료처방보다는 감기에 잘 걸리지 않게 하거나 빨리 이겨낼 수 있도록 체력을 보충하는 처방을 활용하는 것이 더 빠르게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생명현상은 당연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우주의 법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의 입장에서 생명현상은 보면 볼수록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최근 들어 현대의학을 선도하는 미국에서는 비타민, 미네랄, 필수 단백질 등 영양제를 질병치료에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는 환자의 생명력이 질병 치료의 관건임을 서서히 인식해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정길호 아낌없이주는나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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