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정부가 `조국 근대화`를 목적으로 가족계획을 적극 추진한 적이 있다. 1960대 전후 베이비붐 현상으로 1년에 대구시(당시 인구 80만 명)가 하나씩 더 생길 정도의 빠른 인구 증가를 보이자 경제 성장의 저해 요인으로 판단, 가족계획사업을 국가 정책으로 채택한 것이다. 우표와 담뱃갑, 통장은 물론 버스, 택시 등 가는 곳, 보이는 곳마다 산아제한 표어를 부착했다. 소득세 감면이나 공공주택, 금융 우대 등 각종 경제적 혜택도 쏟아냈다. 심지어 예비군 훈련장에는 군복 대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난, 주택난 등을 들먹이며 정관수술을 권하기도 했다.

당시 대중매체도 산아제한 독려 방송이나 광고를 앞다퉈 내보내며 정부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 1960년대 흑백 텔레비전에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다소 유치하고 황당한 광고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1970년대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둘 낳기`로 살짝 바뀌더니, 1980년대 들어서는 아예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한 명 낳기`로 표어도 진화(?)를 거듭했다. 그 때는 누구도 오늘의 저출산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매년 출생아 숫자가 눈에띄게 줄고 있다. 대한민국 인구는 2100년에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국가 재앙을 면치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35만여 명으로 1970년 100만 명에 비해 35%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합계출산율(한 명의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수)도 4.53명에서 1.05명으로 크게 줄어 세계 최저 수준이다. 충남 역시 지난해 1.28명으로 전년대비 0.12명 감소했다. 이대로 가다간 충남도내 15개 시·군 가운데 서천·청양·부여 등 절반이 넘는 8개 시·군이 저출산 고령화로 2040년 이후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경고를 쉽게 흘려버려서는 안된다.

민선 7기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저출산 극복의 선도 모델로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을 만들겠다며 도정 1호로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강조했다. 양 지사는 취임 후 첫 행보로 지난 5일 천안시외버스터미널에 `임산부·아이 동반 고객 전용 매표창구`를 열었다. 다음 날에는 도 소속 20여 개 공공기관장들을 불러 아이 키우는 직원들에 대해 한 시간 늦게 출근하고, 한 시간 일찍 퇴근하는 근무 여건을 만들자며 도의 저출산 대책에 동참할 것을 당부했다.

또 출산보육 전담부서를 만들고, 이번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아기수당과 소규모 사업장 연합어린이집 설치, 고교 무상교육·무상급식, 공·사립 유치원 교육비 지원 확대 등 주요 정책에 대한 재원 마련을 위해 세부적인 실천 방안을 수립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가도 해결 못하는 저출산 문제를 광역단체가 짊어지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정부가 또 한 번 저출산 대책을 내놨지만 지난 수십 년간 수십 조 원의 돈을 쏟아붇고도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점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양 지사의 저출산 대책에 대한 소신과 열정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저출산 대책은 단순히 출산과 보육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 한두 가지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결혼 후 주거문제, 교육까지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안정성, 보수, 승진을 최우선으로 선택한 것과는 다르게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있는 삶)`이 트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시대적 요구에 맞는 보다 포괄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복지수도`를 표방하며 이제 막 첫발을 뗀 충남도가 어떤 효과적인 저출산 대책을 가지고 긴 항해를 이어갈지 궁금하다. `딸·아들 구별 말고 많이 낳아 잘 기르자`는 출산장려 표어라도 만들어 적극 홍보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송원섭 충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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