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는 `장막`, 황해도에서는 `장구덩이`, 전라남도에서는 `지암`이라 불리는 것, 바로 `함정(陷穽)`이다. 함정은 짐승 따위를 잡기 위해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약한 너스레를 쳐서 위장한 구덩이를 말한다. 일상생활에서는 `함정에 빠지다` 와 같이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나 남을 해치기 위한 계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흔히 쓰이고 있다.

인류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생존을 위한 식량(단백질), 가죽, 뼈 등을 얻기 위해서 화살이나 창 등의 사냥도구를 이용해 짐승을 잡기도 했지만 함정을 이용해 더 쉽게 사냥을 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실제 고고 발굴조사에서 확인되는 수렵용 함정은 상부에서 하부로 갈수록 폭이 매우 좁아지는(세장, 細長) 형태이다. 형태적 특성상 동물이 한번 빠지면 몸이 끼이거나 폭이 좁아 움직임의 제약으로 인해 다시 밖으로 빠져나오기 어렵다. 이러한 기본 형태에다가 바닥에 목창 등 여러 가지 시설물을 설치함으로써 함정에 빠진 동물에 상처를 입혀 도약을 방해하거나 움직임을 둔하게 한 흔적도 발견되는데, 울산 입암리유적, 춘천 천전리유적이 대표적이다.

한편 강진 전라병영성(사적 제397호)에서는 군사상의 방어 목적으로 설치한 살상용 함정 `함마갱(陷馬坑)`이 확인되어 눈길을 끈다. 2017년 4월부터 (재)한울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 한 전라병영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 마천목(馬川牧)장군이 쌓아 올렸고 고종 32년(1895년)에 없어지기 전까지 전라도와 제주도의 군사를 총괄한 육군 지휘부였다. 현재까지 조사된 함정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이 역시 위에서 아래로 가면서 좁아지는 형태(지름 3.5-4.9m 내외, 잔존 최대 깊이 약 2.5m)이다. 보병(步兵)은 물론, 말을 타는 기마병(騎馬兵)까지 빠질 수 있는 규모로, 조선시대 성곽 방어시설 내에 존재하는 대규모의 함정이 발견된 첫 사례로서도 의미 있는 유적이다. 함정 바닥에는 죽창(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대나무)을 촘촘하게 꽂아놓은 흔적들도 확인되었다. 아마도 이 함정은 수많은 적을 살상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만나는 구덩이를 `함정`이라고 판단하는 증거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상부에서 하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유구의 형태와 유적 주변 여건에 따라 판단하기 마련이다. 이것만으로 함정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따를 때에는 자연과학적 분석을 병행하기도 한다. (재)중부고고학연구소에서 김포 신곡리유적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신석기 시대의 구덩이 26기가 확인된 바 있다. 유구의 평·단면 형태상 함정유구로 추정되었으나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내부 유기물층의 안정동위원소분석을 했다. 그 결과 구덩이 흙에서 사슴, 노루 등의 동물과 포유류의 동물성 지방산이 검출되어 함정유구임을 재확인 한 좋은 예이다.

주목할 만한 유물을 품고 있는 유구에 비해 비교적 소외되었던 함정유구는 옛사람들의 수렵활동과 군사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회문화적 흔적이다.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유구는 가치가 크지 않다고 여기는 함정에 더는 빠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옛사람들이 파 놓은 깊숙한 함정의 속내는 올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되는 `한국고고학저널`에서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이초롱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