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효약인줄 알았는 데 극약인 경우가 종종 있다. 19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그랬다. `포효하는 20년대`라는 호황기를 뒤로하고, 국민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불황을 맞은 게 그 발단이었다. 후버 행정부는 보복관세로 탈출구를 찾았다. 결과는 세계 무역전쟁이었고, 대공황은 가속화됐다. 벼랑 끝 세계 경제는 2차 세계대전의 한 원인(遠因)으로 작용한다. 후버 대통령과 스무트 상원의원·홀리 하원의원은 곧 유권자 심판을 받고 정계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뉴욕시립대)가 "대통령이 트위터에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도 쉽다고 썼는 데 완전히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트럼프를 비판하고 나선 건 이런 역사를 반영한다. 그는 보복관세의 악순환을 우려하면서 세계 전체무역이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G2는 `미·중 무역전쟁이 양쪽에 자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이라는 보고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역전쟁 본질은 첨단산업의 대륙굴기를 기치로 `제조 2025`를 천명한 중국과 이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정면충돌한 것이다. 대중(對中) 무역적자 해소라는 트럼프의 현실적 목표도 한 요인이다. 급기야 미 정부는 어제 약 2000억 달러(223조 원)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대중 수입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관세 부과에 중국이 보복관세로 맞대응하면 다시 보복한다는 기존 방침을 확인한 것으로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양상이다.

중국은 갈 데까지 가겠다는 결기다. 시진핑 주석은 "뺨을 맞으면 주먹으로 돌려준다"고 했다. "상대의 방문에 답방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來而不往非禮也)"라며 `예기(禮記)`의 한 구절을 인용해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관영매체도 적지 않다. 다분히 장기전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콩을 비롯한 농산물을 고리로 트럼프 지지기반을 송곳 공략하는 내부 이간책도 구사 중이다. 강대국 틈새에서 무역으로 먹고 살아온 우리로서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당장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추가 보복 관세에 아시아 증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중기적으로는 세계 무역량의 4%가 줄고, 세계 GDP가 1-2년 안에 1.4% 증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세계 GDP 감소 폭이 1%도 안 됐던 걸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다. 여기에다 견디다 못한 EU가 무역전쟁에 참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제 2의 대공황과 같은 침체기가 올 것이라는 비관론을 흘려 들을 상황이 아니다.

다시 크루그먼 교수로 돌아가 보자. 그는 "한국경제가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수출의 GDP 성장률 기여도가 80%에 육박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가혹한 지적이 아니다. 특히 수출의 미·중 의존도가 40%에 달한다. 수출이 흔들리면 경제 전반이 휘청이게 되는 구조다. 경기 하강 조짐이 뚜렷한 가운데 설상가상이다. 철강과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의 수입 규제가 보다 강화되고, 무역전쟁 여파로 대중 자본재 및 원자재 수출이 줄어 든다면 우리 경제는 치명상을 입는다.

정부는 무사태평이다. 지난 6일 무역전쟁과 관련한 실무 점검회의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수출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정부발(發) 메시지의 전부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응 체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구제금융사태, 글로벌금융 위기를 모두 이겨낸 저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무역전쟁은 예측 불가능한 쓰나미와 다를 게 없다. 비상(砒霜)이라도 처방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소득주도성장 같은 담론에서 한가하게 헤매다간 한방에 새우등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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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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