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대전시민아카데미에서 경남 통영으로 토지 문학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주말엔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으로 간다. 회원들이 7개월에 걸쳐 강의와 답사를 병행하면서 함께 격려하며 책을 읽어나가는 `토지 읽기 프로젝트`의 한 꼭지다. 아직 토지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 이들이라면 황송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한국문학에서 토지가 일궈낸 성과가 아무리 높고 크다 한들 내가 직접 책의 면면을 더듬어가며 감동을 체감하지 못했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통영은 박경리 선생의 고향이자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무대일 뿐만 아니라 숱한 예술가들의 자취로 눈부신 고장이다. 백석 시인이 이곳까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러왔다가 친구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겪은 사연이 몇 편의 시에 남아있는 줄 알았지만 법정 스님과의 인연은 뜻밖이다. 선생은 풍진 세상을 돌고 돌아 통영 미륵도의 품에 안기셨는데 산 너머의 미래사는 법정이 출가한 절이다. 법정은 서울의 길상사에서 입적하는데 백석의 연인인 자야가 세운 절이며 `길상(吉祥)`은 토지의 주인공 그 길상의 이름이다. 얽히고설킨 인연이다.
`토지`에 나오는 수많은 군상들이 꿈꾸는 건 미래(彌來), 미륵이 오신다는 구원의 세상이다. 미륵은 언제야 오실 것인가. 영영 오시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박경리 선생이 유고시에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고 한 마음에 잇닿아있다. 그걸 깨닫는다면 길상이며 법정이며 사랑을 잃은 백석 시인이며 박경리 선생이며 우리들 저마다가 이미 미륵인 것인지도. 김석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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