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러시아에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렸다. 각 나라 대표 선수들의 몸놀림이 만들어 낸 각본 없는 드라마는 축구의 호불호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찬탄과 비통을 동시에 선사했다. 어느 나라 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릴지 모르지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이번 월드컵으로 러시아는 세계에 분명히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러시아는 현대사의 격랑에 몇 차례 세계의 뉴스 메이커로 등장했다. 1917년 `2월 혁명`과 레닌이 주도한 `10월 혁명`의 성공으로 러시아는 몇 해 뒤 우크라이나 등까지 포함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소련)으로 탄생했다. 미·소 냉전기 소련은 세계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거인이었다. 그리고 그 거인은 지구 생성 이래 전혀 볼 수 없었던, 아니 상상조차 못했던 모습으로 1986년 미래를 바꾸어 놓았다. 바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사고`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북쪽 104㎞에 있는 체르노빌(당시 소련 영토) 원자력발전소 제4호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됐다. 이날 사고로 원자로 주변 30㎞ 이내에 사는 주민 9만 2000명이 모두 강제 이주됐다. 발전소 해체작업에 동원된 노동자 5722명과 이 지역에서 소개된 민간인 2510명이 방사능 피폭으로 6년간 사망했다. 43만 명이 암,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사전은 적었다. 사고로 방출된 방사능 낙진은 한국에서도 검출됐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경험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인터뷰해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펴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 "방사선 때문에 죽어가는 체르노빌레츠와 얼마 전 재난을 당한 일본인, 그리고 희생자의 유족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며, 그들이 생각하는 진보가 무엇인지 물어보라. 신형 휴대전화 혹은 자동차와 삶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는가?"라고 질문했다.

월드컵 열기에도 천안시 직산읍 판정리 대진침대 천안본사 앞에선 마을 주민들이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침대 매트리스 처리의 문제를 제기하며 보름 넘게 농성중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도 소련 정부는 `안전하다`고만 강변하고 비밀주의를 고수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그때보다 나은가?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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