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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비애 : 영화 '태풍클럽'

2018-07-05기사 편집 2018-07-05 16: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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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미의 독립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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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학교에 갇힌 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저 장난으로 치부되고만다. 계획이 좌절되고 시무룩해진 아이들은 강당에 힘없이 앉아있다, 이를 응원하듯 야스코가 음악을 틀고 여자 아이들을 스타인 양 한 명씩 호명한다. 여자 아이들은 천천히 기운을 차리고 한 명씩 교복을 벗어던지며 춤을 추기 시작하고 그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켄도 그 무리에 뛰어들어 함께 춤을 춘다. 이렇게 누군가를 부르고 대열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은 기차놀이를 하듯 열을 맞췄다가도 각자의 춤에 몰두한다. 카메라는 이 과정을 매우 미세하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아이들을 지켜본다. 그러다 멈췄을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기묘하게 영정사진의 틀처럼 보이는 농구대와 그 안으로 기쁘게 뛰어들어와 포즈까지 취해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날 아침이 오기 전 미카미는 교실 창 밖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 친구들에게 죽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죽음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불경스러워 보이지만 감독은 끈덕지게 아이들을 죽음의 이미지에 다다르게 한다. 게다가 이 이상한 연결은 이미 죽음에 이르러 죽음을 추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번의 죽음은 불가능하다.

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세일러복과 기관총' 때문인지 소마이 감독은 데뷔작인 '꿈꾸는 열다섯'부터 '세일러복과 기관총', '숀벤 라이더', '이사', 그리고 '태풍클럽'까지 아이들(일부는 당시 정상급 아이돌이었다)이 주인공인 영화를 다수 찍었다. 그는 주어진 조건 하에 성공적인 영화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스튜디오 감독이었고 자신도 거기에 크게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자기만의 것을 숨겨놓으려 했다. 항상 그의 영화를 볼 때면 아이들과 어른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른의 세계가 사라지고 그 안에서 어른을 가장한 아이들만이 영화 속 세계를 장악한다. 그리고 그 안엔 죽음의 이미지가 되풀이된다.

그것은 소마이 감독이 일본 영화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것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큰 주목을 받은 일본의 유명 감독들로 인해 외부의 시선은 '일본 영화'를 구로사와, 미조구치, 오즈의 식으로 규정했다. 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과 동세대 감독들은 늘 자신만의 '일본적임'을 찾아내려 고군분투했다. 그렇기에 소마이 감독에게 성장이라는 것은 늘 돌파할 수 없는 난관, 지속되는 실패, 즉 상징적인 죽음으로 드러난다.

영화 속 죽음들은 아이들에게 분명한 충격을 준다. 그렇지만 죽음의 틀 안에서 즐거움을 표출하고 그 안에 뛰어드는 대범함을 보여주었던 아이들은 정작 미카미의 죽음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실제 육체의 죽음 앞에서 인물들은 침묵하고 실패만을 느낄 뿐이다. 야망은 꺾였고 실제를 마주했을 때는 침묵한다. 그리고 그런 공허함만을 안고 아이들은 성장할 것이다. 소마이 감독에게 성장과 죽음은 그런 것이다. 성공 불가능한 성장, 침묵만이 가능한 죽음. 그렇기에 자신 역시 "패배만이 가능한" 감독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그만의 영화 만듦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그의 영화를 볼 때면 즐거움보다는 우울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살아 있고, 살아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처연하게 보는 것처럼.

장승미 대전 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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