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전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철도영화제에 다녀왔다. 기차를 배경으로 했거나, 기차가 사건의 중심이 되는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였다. 이날 상영작은 `은하철도의 밤`(스기이 기사부로, 1985)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극장과 잘 어울렸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아서 극장 내부를 돌아보거나 소소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만약 다른 곳이었다면 이 정도의 감흥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왜 그럴까? 나는 이것이 영화 보는 장소에 대한 느낌, 즉 장소성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중요하겠지만, 때로는 누구와 함께 봤는지 또는 어디에서 봤는가 하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

예전에 군 복무를 했을 때의 일이다. 훈련 때문에 방문했던 어느 부대에서 휴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본부의 방송실에서는 특별히 영화를 상영했고, 군인들은 각자의 내무반에서 그 영화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희희낙락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차례로 잠이 들었다. 결국 그 내무반에서 끝까지 깨어있던 사람은 손님이었던 나 혼자 뿐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영화가 다 끝난 뒤 사람들을 깨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던 상황이다. 그리고 얼떨결에 봤던 영화 `첨밀밀`(진가신, 1996). 아직도 첨밀밀을 생각하면, 그날의 내무반 풍경이 함께 떠오른다. 멜로 영화를 보기엔 참으로 이상한 장소였다.

우리는 대부분 멀티플렉스나 집에서 영화를 본다. 시원한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블록버스터를 보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다. 우리 집 소파에 누워 영화를 보는 것도 몹시 행복하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서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그런 곳에서는 영화뿐만 아니라 극장이라는 공간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장소의 냄새를 맡고 사람을 느끼며 분위기를 경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물론 조금은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근사한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실 철도영화제는 옥상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우천 관계로 실내에서 개최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비에 젖은 거리를 바라보았다. 비 내리는 극장도 꽤 근사했다. 오세섭 독립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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