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칼럼] 모자람도 넘침도 없어라

이선미 을지대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이선미 을지대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폐에 물이 찼어요."

응급실 번호가 찍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병원으로 갈 채비를 한다. 시계 바늘은 새벽 3시를 향하고 있다. 밤을 넘기지 못하고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상황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한 문장만 들어도 충분히 짐작된다. 환자는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은 후 콩팥의 기능을 대체하는 방법으로 혈액투석을 한 지 3년이 됐다. 날이 새면 인공신장실에서 만날테지만, 이번엔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에서 만나리라.

우리 몸의 70%가 물이다. 혈액은 물론이고 심장, 폐, 근육 등 몸의 구석구석에서 물이 순환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5대 영양소에 물을 더해 6대 영양소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떤 것과도 대체할 수 없는 영양소인 물은 2%가 부족하면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온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1.5-2ℓ의 물을 마시면서 몸을 순화하여 건강을 지키라고 한다. 이렇듯 물이 신체의 순환을 관장하는 역할을 하는가 하면 몸의 항상성을 주관하는 역할은 신장(콩팥)이 한다.

만성신부전증은 신장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말한다. 신장의 여러 가지 역할 중에서 몸속을 순환하고 남은 물과 찌꺼기를 소변으로 분비시키는 일이 있다. 항상성의 균형을 맞추는 핵심이 소변을 통한 배설이다. 이런 적절한 배출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 만성신부전증이고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혈액투석이다.

그래서 혈액투석을 받는 대상자들은 항상 물과의 전쟁을 치른다. 체외로 배출되는 수분이 호흡이나 땀을 통한 것은 오줌을 통한 것에 비하면 미량이다. 이렇듯 소변이 배출되지 못하므로 먹는 것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 끼니마다 섭취하는 식사를 비롯해 그 음식에 포함된 물, 매일 한 움큼씩 약을 위해 먹는 물, 갈증을 달래기 위해 먹는 물을 섭취할 때마다 셈하고 조절하는 것이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생명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 생리적 욕구를 억누른다. 건강한 사람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마시는 물이지만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들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어찌 보면 지독하게 제한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주일을 세 번으로 나눠 매번 네 시간씩을 하게 되는 혈액투석은 투석한 후 다음 투석 시간까지 체중 증가량이 처방된 본인의 표준체중(건 체중)에서 4%를 넘지 않아야 비교적 안전한 일상생활과 투석 중에도 위험에 노출될 불안이 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데 환자의 폐에 물이 찼으니, 이 밤에 치료방법은 혈액투석이 유일하다는 당직 의사의 말을 수화기 너머 들었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 몸속 구석구석을 여행한 후 막힌 출구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체내 기관에 표류했을 테고, 그 무게를 참고 참다 견디지 못해 얕은 호흡을 뱉으며 응급실을 찾았을 환자를 떠올리니 절로 숨이 막히는 듯하다. 무심코 가볍게 한 잔의 물을 마신 후 숨을 깊게 내쉬어 본다. 환자가 얼마나 갈망하였던 한 잔이었을까…. 자연 질서를 수호하는 비의 신 `쁘라삐룬(PRPIROON)`이 태평양으로 방향을 튼다는 라디오뉴스를 듣는다. 나는 애잔한 환자를 떠올리며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선미 을지대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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