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밀러는 푸른 눈의 영국인 청년이다. 시인이자 영문학 박사이며 대전시교육청에서 원어민 영어교사를 하고 있다. 지난봄 제주에서 열린 4·3 추모 전국문학인대회에 동행하면서 대전작가회의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여느 한국인보다도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남긴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를 통해서 대전 산내골령골에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 있다는 것을,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대전형무소 민간인재소자 등 7000여 명이 동족인 한국군경에 의해 3차례에 걸쳐 무참하게 죽임을 당해서 구덩이에 암매장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팟캐스트 `아는 것이 힘이다`의 정진호 PD가 제작한 추모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골령골이야기`에 평화통일교육센터의 임재근 팀장과 함께 출연하였고 다큐가 완성되면 고국인 영국에 가서도 상영하겠다고 했다. 부끄러웠다. 아우슈비츠와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분개하면서도 정작 우리 앞마당에서 일어난 참극은 제대로 모르고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우리 대전작가회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지난달 23일 대전작가대회에서 추모 다큐를 상영하였고,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학살 추모 전국문인시화전`도 함께 열 수 있었다.

지난달 27일에는 산내골령골 추모공원에서 68주기 위령제가 열렸다. 우리 대전작가회의도 행사에 맞춰 추모시화전을 다시 열었다.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인 데이빗 밀러와 임재근 팀장, 정진호 PD를 다 함께 만날 수 있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위령제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푸른 눈의 영국인 청년 데이빗 밀러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울컥했다.

"산내 뼈잿골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에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으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죽음보다 참혹한 구덩이 속에 처박혀 얽히고설킨 채/ 육십팔 년을 잠들지 못하는 뼈의 원혼들이 있다/무엇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끈 것인가/ 무엇이 푸른 눈의 젊은이를 이곳까지 이끈 것인가/ 무엇이 이렇듯 그와 우리가 만나 한길을 걷게 만든 것인가" - 졸시,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부분

김석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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