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대한민국은 온통 축구 이야기에 파묻혔다. 이날 새벽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피파 랭킹 1위인 독일을 예상을 뒤엎고 물리쳤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국민들은 이날 하루 만큼은 축구 이야기를 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이날 오전 10시 세종시청에서 열린 이춘희 시장의 정례브리핑도 축구 이야기로 시작됐다. 이 시장은 밝은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 "2 대 0 으로 축구 이긴 것 보셨나요. 다 질 거라고 했는데 한분만 맞췄습니다." 며 축구 이야기부터 꺼냈다. 우리 국민들에게 지방선거 이후 곧바로 시작된 월드컵 이야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시장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월드컵 독일전 승리에 대한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어서 한 말로 여겨진다.

문제는 아무리 즐거운 이야기라도 그 시기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 법이다. 세종에서는 바로 이틀 전 세종시 출범 이래 가장 최악의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현장은 보름 전까지만 해도 이춘희 시장이 선거 캠프를 꾸렸던 사무실 바로 앞이다. 이 사고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아직 피해 원인이나 발화 장소, 시기 등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 시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는 시각 화재현장에서는 경찰과 국과수 등 7개 기관이 합동으로 현장 감식을 하고 있었다. 사망자의 유가족들이 화재 현장에 나와 오열하기도 했다.

축구 이야기 꺼낸 게 무슨 큰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시장의 상황 인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시장의 이날 브리핑은 전날 채수종 세종소방본부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언론 브리핑을 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다른 지역이면 몰라도 세종만큼은 시기가 시기인지라 월드컵의 즐거움을 나누기 보다, 화재의 아픔을 나누는 일로 브리핑을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브리핑 직전 축구 이야기 때문인 지 이 시장은 화재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매끄럽게 답변하지 못했다. 화재진압 이후의 대응에 대해 물었지만, 인명구조가 최우선이라는 식의 동문서답을 하기도 했다.

이춘희 시장은 6·13 지방선거 당선 직후 민주당 세종시의원 당선자들을 대동하고 언론 브리핑을 나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이 시장은 기자들 앞에서 직접 시의원 후보들을 소개했으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선거 승리를 자축하는 세리머니인데 애교로 봐줄 수도 있겠지만, 지나쳤다는 말들이 더 많았다. 시의원 당선자들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 시장 주변에서 이른바 `병풍`을 치게 된 것이다. 세종시의원 당선자들은 3기 세종시의회에서 이 시장과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사람들이다. 의회의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이 시장은 이날 항간의 우려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의회는 조례 제정· 집행부에 대한 감시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집행부에서도 시의원들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일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시장의 이날 행동은 승자의 넘치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한 장면`으로 지역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이춘희 시장과 민주당 세종시의원 후보들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거뒀다. 이 시장은 무려 71.3%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고, 민주당 시의원 후보들은 세종지역 16개 선거구 모두 싹쓸이를 했다. 민주당의 압승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설마 그럴까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몰랐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민주당의 압승을 축하하는 이야기는 잠깐이고, 민주당의 일당 독주체제와 오만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기 정무부시장을 공모하고 있는데 내정설이 나돌고 있고, 민주당 시의원 당선자들끼리 모여 의장을 뽑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선출인 지 추대인 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달은 차면 기운다고 했다. 항상 조심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낮은 자세로 시정과 의정에 임해야 한다. 은현탁 세종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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